나라살림·조세형평성 생각하면 “금투세 도입 재논의해야”
박금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소신발언 … 금투세 폐지 따른 재정 악영향 지적
배당소득 최고세율 25%로 낮추면 매년 4600억씩 세수감소, 고소득자에 혜택
정부의 세금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고위공무원이 “중장기적으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이유는 나라살림과 조세형평성이다. 지난해 금투세를 폐지한 탓에 올해 나라살림에 나쁜 영향을 줬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기본원칙에 비춰봐도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박금철 기재부 세제실장은 전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5 세법개정안 토론회’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전 정부에서 여야 합의로 폐지된 금투세에 대해 ‘앞으로 어떡하느냐’, ‘근본적인 방향을 한 번 더 봐야 된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 부분은 중장기적으로 우리 금융 과세 체계를 어떻게 개편해야 될지, 효율성이나 형평성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고양이 목에 걸 방울’된 금투세 = 금투세는 금융투자로 발생한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 펀드 등 금융상품에서 발생하는 투자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다.
지난 2024년 여야는 금투세를 도입하되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기반해 2025년 1월1일부터 시행이 예고됐다. 조세형평성과 세수확보가 세제개편 명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윤석열정부는 ‘자본시장에 줄 충격이 크고 시장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야합의를 번복, 금투세 폐지를 선언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였던 민주당은 금투세 도입을 추진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당론을 번복해 ‘폐지’로 선회했다. 결국 금투세는 작년 12월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폐지된 바 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에도 세수 확보를 위해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려 했지만 개미 투자자들의 비판을 의식해 철회했다.
여권 내에서도 ‘복합위기 경제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란 옹호론과 ‘포퓰리즘과 정책원칙 훼손’이란 비판론으로 엇갈렸다. 하지만 결국 ‘자본시장 활성화와 내우외환의 경제위기 탈출’에 힘을 실은 이 대통령의 의중이 관철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국가재정 어떻게 꾸려갈지” = 이런 시점에서 정부 고위관료가 금투세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란 말이 나온다. 기재부 고위 관료가 국회 공식행사에서 금투세 재논의 필요성을 시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박금철 세제실장이 내세운 금투세 재논의 필요성의 배경은 세수확보와 조세형평성이다. 그는 “당장 금투세가 폐지가 된 상황에서 내년과 내후년 국가 재정을 어떻게 꾸려갈지, 어디서 재원이 나올지에 대해 고려했다”고 말했다. 금투세 폐지로 국가재정이 영향을 받아 대체 재원을 고민했었다고 토로한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 실장의 ‘금투세 중장기 재검토 필요성’ 주장과 같은 맥락의 발언이 이어졌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도 “윤석열정부 3년 내내 조세 지출이 법정 한도를 지키지 못했고, 재정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버렸다”고 설명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에 법인세를 올리긴 했지만, 금투세를 걷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조세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금투세를 제대로 걷는 게 맞다”라고 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도 “지난해 민주당과 국힘 거대 양당이 금투세 폐지에 합의했지만, 조국혁신당은 반대했었다”라며 “원천 징수라든지 여러 보완을 전제로 저희는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고 강조했다.
◆연간 4600억원 세수감소 =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배당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45%에서 25%로 낮추면 연간 4600억원씩 세수가 감소한다는 추산이 나왔다. 당초 정부안대로 최고세율을 35%로 낮출 때 발생하는 세수 감소분(연간 2000억원)보다 2배 이상 세수 손실이 커지는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감세 기조를 되돌리겠다는 이재명정부의 정책 방향이 후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비공식 추산을 근거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세율을 25%까지 낮추면 연간 세수 감소 효과는 4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는 정부의 세원 확충 노력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배당·이자 등 금융소득에는 연 2000만원까지 세율 14%가 적용되고, 이를 초과하면 종합소득에 합산돼 최고 4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기재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통해 3년간 한시적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제도를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45%에서 35%로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기재부는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매년 2000억원씩, 3년간 총 6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러나 최근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배당 확대를 유도하려면 세율을 더 낮춰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자 전날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최고세율을 25%로 추가로 인하하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최고세율만 당초 발표한 35%에서 25%로 낮출 경우 연간 세수 감소 규모가 기존 정부안의 2.3배인 4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 것이다.
배당을 줄인 기업에까지 감세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에는 배당 성향 35% 이상인 기업이 배당한 소득에 최고세율 25%를 적용하는 세법 개정안(이소영 의원안)이 계류 중이다. 이 안대로면 배당 성향 40%인 기업이 배당을 37%로 줄여도 감세 요건을 충족한다. 이는 ‘배당확대 유도’라는 세제 개편의 취지와 어긋난다.
배당소득 감세가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크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하위 50%의 1인당 평균 연간 배당소득은 1만2000원에 그쳤다. 하지만 상위 1%는 1억1700만원, 상위 0.1%는 79억5000만원에 달했다. 상위 0.1%가 전체 배당소득의 46%를, 상위 1%가 67.5%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0.35%에 그쳤다. 감세 혜택이 초고소득자에게 쏠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