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 톺아보기

인공지능(AI) 자본주의의 역설

2025-11-11 13:00:17 게재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의 인공지능(AI)은 여전히 수동적이며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앞으로 5~10년 안에는 범용인공지능(AGI)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AGI란 인간 수준의 지적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실제로 올해 7월 오픈AI와 딥마인드의 모델이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금메달 수준의 성적을 거둔 것은 이를 상징한다. 오픈AI의 샘 알트먼 CEO 역시 “AI가 1년 안에 새로운 과학적 통찰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며 기술발전 속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육’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듯 AI 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정신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다. AGI의 시대가 열리면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학습하고 알고리즘을 개선하며 자기 향상 루프를 작동시키는 자율적 경제 주체로 진화할 것이다.

그 파급력은 산업혁명이나 인터넷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특히 저성장 기조가 고착된 세계경제에서 AI의 발전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 각국의 부채 문제를 구조적으로 완화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높아지는 ‘AI투자 과열' 경고음

그러나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이러한 막연한 낙관론에 제동을 걸었다. AI가 단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여 GDP를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이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자본 수요가 금리상승을 자극할 경우 오히려 부채비율(부채/GDP) 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대한 투자액은 이미 수천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향후 수조달러의 추가 자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하버드대 제이슨 퍼먼 교수 또한 “AI 투자는 성장률을 일시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투자수요 폭증이 금융여건을 압박해 금리를 자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성장률이 이러한 비용상승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국가와 기업의 부채비율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요컨대 AI 투자는 ‘열매를 따기 전에 비용청구서가 먼저 도착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는 부채가 성장을 자극했지만 이제는 성장이 새로운 부채의 연료가 되고 있는 셈이다.

AI의 생산성 향상 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은행은 “AI가 생산성과 일자리 변화에 기여할 잠재력은 크지만 거시경제 성장률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증거는 아직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통계 역시 2024년 선진국의 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 초반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음을 보여준다. 이는 AI가 아직 생산성 특이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AI가 본격적인 경제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의 AI열풍이 실제 생산성 향상보다는 자산가치의 과대평가에 기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미국 증시는 AI 붐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동시에 ‘AI 버블’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는 상황이다. MIT 연구진은 올해 8월 생성형 AI에 투자한 기관의 다수가 아직 실질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 역시 “오늘날 AI 기업의 고평가는 1999년 닷컴버블과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단기적으로는 자산가격 상승이 세계경제를 지탱하겠지만 주가가 급락할 경우 성장률 둔화와 개도국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 경제, 불평등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

AI 투자 열풍은 금융시장에서는 성장의 신호로 읽히지만 실물경제에서는 새로운 불균형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자산가격은 급등하고 임금은 정체되며, 부채는 늘고 소비는 위축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세계경제는 또 다른 형태의 만성적 불황에 빠질 수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그로 인해 창출될 부(富)의 규모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막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현재 AI의 두뇌라 불리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은 사실상 엔비디아가 지배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용 GPU의 90% 이상이 엔비디아 제품으로 알려졌으며, 이러한 하드웨어 위에서 작동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 역시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수의 거대 기술기업이 과반을 점유하고 있다.

AI 산업 생태계는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초기자본이 요구되는 구조로 다수의 참여자에게 개방된 시장이라기보다는 소수의 기술 인프라 보유자에게 종속된 형태로 작동한다. 그 결과 AI 경제는 이미 소수의 거대자본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분배구조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핵심요인이 될 것이다.

이 변화는 노동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당초 예상과 달리 AI는 단순노동보다 지식노동 영역에서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법률자문·회계감사·의료 등 고숙련 전문직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에 의한 인력 대체와 역할 재설계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약 1억70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약 9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AI 빅데이터 핀테크 등 고숙련 직종이 비교적 안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AI를 직접 개발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기업들인 IBM 아마존 메타 구글조차 최근 수천명에서 수만명 규모의 인력감축을 단행하거나 예고하고 있다. 이는 AI 시대에 안전한 일자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소수의 자본집약적 ICT 기업이 AI 혁명으로 창출된 부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동안 불특정 다수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상태로 내몰리는 현상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소득원을 잃게 된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오픈AI의 샘 알트먼은 ‘월드코인(Worldcoin)’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제안했다. 홍채 스캔을 통해 개인의 디지털 신원을 확인하고, AI가 창출한 부의 일부를 암호화폐 형태로 분배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생체·재정정보를 민간 기업이 대규모로 수집한다는 점에서 상업적 남용의 우려가 크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정보가 권력이나 정부의 손에 넘어갈 경우 디지털 ‘빅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한발 더 나아가 “노동의 종말 이후 사회” 를 논한다. 그는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UBI)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담론에서도 알 수 있듯 기본소득은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기 때문에 개인의 근로의욕을 약화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 자체를 흔든다. 노동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통로이자 공동체 참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AI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소비만 하는 존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AI시대 위한 사회적 설계도 새로 그려야

AI는 현재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이자 어쩌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풀어줄 새로운 지성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지향점이 부의 집중과 인간성의 상실이라면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기술이 만든 신세계가 세계 경제를 살찌우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해치지 않으려면 지금이야말로 AI시대를 준비한 사회적 설계도를 새로 그려야 할 때다.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