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혐오에 관대한 나라가 선진국일까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시위대가 도쿄나 오사카 거리에서 “조선인은 떠나라” “조선인을 죽여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거나 밉다기보다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12년 전에 썼던 칼럼의 시작 부분이다. 재특회를 한국 극우단체, 도쿄나 오사카를 서울, 조선인 대신 ‘짱깨’로 바꿔 여기 그대로 다시 써도 될 것 같다.
딱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서였다. 시위대만 벗어나면 좋은 아빠이고 남편이고 친구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성실한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이 혐중시위 등을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야권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4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다. 특정 국가 국민 인종에 대해 공연히 모욕하면 1년 이하의 징역형,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반의사불법죄와 친고죄 조항을 적용하지 않아 수사기관의 직권수사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이를 ‘중국 심기 경호법’ ‘표현의 자유 침해 악법’이라며 맹비난했다. “반미시위에는 침묵하더니 왜 반중시위만 문제삼느냐” “중국 비판도 못 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헌법상 가치와 관련된 규제 입법은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데 중형까지 부과함으로써 과잉입법이라는 주장도 곁들였다.
제노사이드는 오랜 혐오 차별 증오의 산물
혐중 시위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벌이는 이런 정치적 공방을 보면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깝다. 헤이트스피치와 관련해서는 표현의 자유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던 캐나다 인권변호사이자 법학자 어윈 코틀러 교수는 “홀로코스트는 가스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말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 가운데 하나인 제노사이드(집단학살)는 갑자기 물리적 폭력으로 시작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퍼진 혐오 차별 비인간화 증오선동 등 언어적 폭력이 먼저 사회에 뿌리내린 결과로 일어난 점을 지적한 말이다.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앞서 유대인을 ‘비인간’ ‘해충’ ‘사회 악’ 등으로 비하하는 언어와 선전을 지속적으로 유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에서 최근의 르완다사태에 이르기까지 제노사이드의 배경에는 어김없이 헤이트스피치가 자리하는 게 확인된다.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을 지낸 박선기 변호사는 헤이트스피치를 제노사이드의 하나로 규정하고 중죄로 다뤘다고 말한 적 있다. 100여일간 80만여명의 학살극이 벌어진 르완다사태에는 투치족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언론의 선동이 기름 역할을 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주도한 RTLM방송국 소유주 펠리시앙 카부가를 끝까지 추적, 2020년 26년 만에 체포해 종신형으로 단죄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제주4.3, 국민보도연맹사건, 5.18민주화운동 등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는 어김없이 ‘공산주의자’ ‘빨갱이’ ‘폭도’ 등으로 대상자를 혐오하는 언어와 선전이 먼저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낙인찍기와 차별에 관대했다. 최근 정치적 진영 대결이 격화하면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악마화하는 등 언어가 갈수록 거칠어지는 현실의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헤이트스피치’ 근본적 고민과 논의 필요
혐중시위 처벌 입법 공방은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고민과 논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헤이트스피치는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폭력을 부추기려는 목적성을 갖고 있다. 그 대상은 국적이나 인종만이 아니라 성별 연령 종교 성 정체성 장애 계급 직업 외모 지적능력 등 인류보편의 가치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든 영역이 될 수 있다. 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과 연결된다.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에서도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이 부분에서는 국제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가 권고해온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2007년 최초 발의 이후 18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