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비대면 강의, 공정성은 ‘글쎄’
대규모 인원 수강에 부정행위 가능성 꾸준히 제기 … 단답형 등 평가 방식도 문제
주요 대학 학생들이 비대면 시험에서 오픈채팅방을 통해 문제를 공유하거나 인공지능(AI) 서비스를 활용해 집단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되면서 대규모 인원이 수강하는 비대면 강의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일부 대학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대규모 비대면 강의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대학정보공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2학기 기준으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등의 대학은 총 534개 강의를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대학별로는 연세대가 321개로 가장 많았고 성균관대(56개) 서울대(51개) 고려대·한양대(각 44개) 서강대(18개) 순이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본격적으로 대면 수업이 재개된 2022년 2학기와 비교하면 서울대(3→51) 연세대(34→321) 서강대(1→18) 등 3곳은 비대면 강의가 더 늘어난 상황이다.
이를 두고 대학가에서는 ‘재정 효율’ 등을 이유로 비대면 수업을 늘리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비대면 강의의 경우 교수 한 사람이 수백명의 학생을 맡는 데다 대형 강의실을 확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한 사립대의 A 교수는 “동영상 강의는 코로나19 시기엔 고민의 결과였지만 지금은 비용 절감 차원”이라고 털어놨다.
교수 입장에서도 비대면 강의가 편리한 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학생과 마주할 필요 없이 동영상만 촬영하면 되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일부 수업은 시험마저 비대면으로 보며 관리·감독 업무는 더 적어졌다.
학점 경쟁과 취업 준비에 시달리는 학생 역시 비대면 강의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영상 시청으로 출석을 대신하는 데다, 과제와 시험의 감시망이 아무래도 느슨해서다.
실제로 지난달 연세대에서는 600명이 수강하는 ‘자연어 처리와 챗GPT’ 비대면 강의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이 AI를 몰래 쓴 걸로 드러났다. 해당 시험은 지난달 15일 비대면 형식으로,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 객관식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응시자는 시험 시간 내내 얼굴과 손이 보이도록 영상을 촬영해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이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거나 여러 프로그램을 겹쳐 띄우는 방식으로 부정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고려대 역시 1434명이 듣는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비대면 강의 중간고사 도중 일부 학생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문항에 대한 질문을 남기고 답을 공유했다. 해당 시험은 전면 무효 처리됐다. 이 채팅방에는 수강생 5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의 자료를 AI에 학습시킨 이후 답변을 도출, 이를 제출하거나 공유한 학생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면 시험에 대한 논란은 강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2020년 수도권 한 대학에서는 의대생들이 시험 문제를 함께 풀거나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정답을 공유한 사실이 적발됐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대형 비대면 수업에서의 부정행위 논란은 대학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학생들도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은 학교와 교수들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4~6년제 대학생 726명 중 91.7%가 과제나 자료 검색에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대학 131곳 중 71.1%가 아직 생성형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