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음, 미국은 현금 챙겨”…“투명한 검증 필요”
핵추진잠수함 건조, 농축·재처리 합의내용 구체성 결여
농산물·플랫폼 규제 등 ‘비관세 장벽 완화’ 이슈도 불씨
국힘 “구체적 내용, 국민 앞에 공개해야” 비준 동의 요구
한미 양국이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에 대해 정부 여당은 ‘역대급 성과’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부담해야 할 부분은 확정된 반면 챙겨야 할 부분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확정된 현금을 내고, 조건부 어음을 받은 셈”이라며 투명한 검증을 위해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17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송언석 원내대표는 “정부가 발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 자료 이른바 팩트시트에는 국익을 위한 핵심 사안에 대한 언급이 모두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면서 “관세 인하 시기라든지 핵추진잠수함의 개발 장소, 그리고 시기, 농산물 시장의 개방 여부 등에 대해서 핵심적인 쟁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모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면서 “국익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협상 결과에 대해서 국회의 검증과 비준 동의 절차를 생략한 채 특별법만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명백한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두고 여당은 대미투자특별법을 제정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대립하고 있다.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하고, 한국은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같은 날 한미 통상장관이 서명한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35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는 우리 기업의 직접투자(FDI), 보증, 선박금융 등을 포함한 1500억달러의 조선 협력 투자와 양국 경제 및 국가안보 이익을 증진하는 분야에 대한 2000억달러의 투자로 구성된다. 2000억달러 투자는 한국 외환시장 부담 경감을 위해 연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이뤄지며 미국으로부터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투자’를 추천받아 진행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김 건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날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일본 경제 규모가 우리의 2배 반이고 외환 보유고도 우리랑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많은데, 일본이 5500억달러 정도 투자를 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한 2200억달러 정도면 적절하다”면서 3500억달러 투자는 과도한 부담이라고 평가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원자력 농축·재처리 등의 합의와 관련해서도 이행 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구체성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GDP 3.5% 국방비 증액 공약도 했고, 미국 무기 250억달러 구매나 아니면 방위비 분담 외에 별도로 주한미군 지원에 330억달러를 한다고 한 것은 상당한 부담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에 비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뭔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농축·재처리라든가 핵추진 잠수함 등을 성과로 꼽고 있는데 이게 추상적이고 원론적 수준이라서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지도, 핵추진 잠수함을 한국에서 건조하는지, 미국이 핵연료를 보급해 주는 건지 명확치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이 됐다”고 부연했지만 건조 시기, 장소, 핵연료 확보 방안 등이 명문화되지 않아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 올해 기준 GDP 대비 2.32%인 국방예산을 3.5%까지 증액하기로 하고 2030년까지 250억달러(약 36조원)로 미국산 군사 장비를 구매하기로 했다. 또 한국의 법적 요건에 부합하게 주한미군에 330억달러(약 47조원) 상당의 포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한미군 전력을 현 수준(약 2만8500명)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은 명시되지 않아 향후 주한미군 규모 조정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또 정부는 농축산 분야 추가 개방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미국 문건에는 ‘비관세 장벽 완화’라는 형태로 포함돼 향후 추가 협상 압력 여지를 남겼고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이슈와 관련해서도 ‘미국 기업이 차별 받지 않도록 보장하고 불필요한 장벽이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향후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16일 논평을 통해 “정부가 공개한 한·미 ‘팩트시트’는 우리가 치른 비용만큼 국익이 돌아오는지에 대한 핵심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면서 “핵잠수함 건조 장소와 핵연료 공급 구조는 문서에 존재하지 않고 2000억달러 현금 투입의 조달 방식·손실 리스크·안전장치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설명과 달리 미국 문건에는 농축산 개방을 전제로 한 표현이 포함돼 있고, 망 사용료·플랫폼 규제·지도 데이터 반출 같은 비관세·디지털 주권 사안까지 조용히 들어갔다”면서 “정부가 비준을 회피한다면, 이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드러날 세부 내용과 책임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