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익 초과하는 과징금 부과” 주병기 발언 현실화하나
공정위, 계열사 부당지원 우미에 483억대 과징금 부과
벌떼입찰 자격 얻으려 계열사 5곳에 공사실적 밀어줘
부당지원으로 입찰자격 확보 공공택지 2곳 낙찰 받아
우미그룹 1290억 이익확보 … 자녀2명도 117억 차익
수천억 불법이익에 과징금 백억대 … “법제도 개선해야”
잠재이익을 초과하는 과징금을 부과해 기업 불공정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이 현실화하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의 푼돈을 갈취하는 배달앱의 불법에 대해서도 공정위가 칼을 빼들었다.
공정위가 계열사를 ‘벌떼입찰’에 참여시킬 목적으로 아파트 공사 물량을 몰아준 혐의로 우미건설그룹에 과징금 483억원을 부과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 취임 후 전원회의를 거친 첫 제재 사례다. 향후 기업 부당지원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부당지원한 법인 검찰고발도 = 18일 공정위에 따르면 2세 회사를 포함한 계열사에 5000억원 규모의 공사 일감을 제공한 건설회사 우미에 과징금 483억7900만원을 부과하고 우미를 검찰 고발했다.
우미는 공공택지 아파트 건설과 분양이 주력사업인 기업집단으로 아파트 브랜드 ‘우미 린(Lynn)’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를 보면 우미는 2010년대부터 공공택지 입찰에 다수 계열사를 동원하는 소위 ‘벌떼입찰’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던 중, ‘벌떼입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면서 2016년 8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공택지 1순위 입찰 요건을 강화해 주택건설실적 300세대를 갖춘 업체만 1순위로 입찰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개선했다.
그러자 우미는 기존에 벌떼입찰에 활용하던 계열회사들을 변경된 제도하에서도 계속 입찰에 참여시키기 위해 공사물량 몰아주기에 나섰다. 2017년부터 자신들이 시행하는 12개 아파트 공사현장에 주택건설 실적이 없는 지원객체들을 비주관시공사로 선정, 4997억원대 공사물량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주택건설 실적이 없던 계열사 우미에스테이트, 명가산업개발(현 우미개발), 심우종합건설, 명상건설, 다안건설(현 우미글로벌)은 모두 연매출 500억원 이상의 중견 건설사로 단번에 성장했다. 공공주택 입찰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우미는 그룹 차원에서 이 사건 지원행위를 기획・추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례와 달리 시공사 선정을 사업 주체인 시행사가 아니라 그룹본부(우미건설)에서 결정했다. 그룹본부는 공사실적이 필요한 계열회사 중에서 관련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업체를 선정했다. 심지어 아직 건축공사업 면허조차 없는 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또 그룹본부는 공사 이행 과정에서도 경험이 없던 계열사들이 공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다른 계열사 직원을 전보해주고, 이들 회사가 수행해야 할 업무들을 대신 수행해주기도 했다.
◆벌떼입찰로 2개 공공택지 낙찰 = 5개 계열사들은 이 사건 지원행위로 총 4997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공사 매출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모두 연매출 500억원 이상의 중견건설사로 성장했다. 특히 대부분의 계열사들은 지원행위 전까지 매출이나 주택공사 경험이 거의 없던 업체들이었다. 사실상 이 지원행위 만으로 시장에 진입해 성장하는 등 주택건설업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질서가 크게 저해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공공택지 1순위 입찰자격을 확보한 계열사들은 총 275건의 공공택지 입찰에 부당하게 참여했다. 그 중 ‘우미에스테이트’와 ‘심우종합건설’은 2020년 실제 2개 택지 낙찰에 성공했다. 이 2개 택지를 개발해 기업집단 우미는 매출 7268억원과 매출총이익 1290억원을 확보했다.
특히 ‘우미에스테이트’는 2017년 6월 총수 2세 2명이 자본금 10억원으로 설립한 회사였다. 우미그룹의 물량지원과 벌떼입찰로 성장한 이 회사는 우미건설에 127억원에 매각됐다. 총수 자녀 2명은 5년 만에 117억원의 매각차익을 얻었다.
공정위는 우미 계열사들의 이러한 행위가 지원객체들에게 ‘상당한 규모’로 거래해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지원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최장관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이번 조치는 계열회사에 합리적 사유 없이 상당한 규모의 아파트 공사 일감을 몰아줘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부당지원 행위를 제재한 사례”라며 “특수관계인(총수 일가) 회사가 아니더라도, 입찰자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계열회사를 지원하는 경우,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지원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불법이익이 더 많다” = 공정위의 이번 제재에는 주병기 위원장의 불법행위 근절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 위원장은 “담합·갑질 등 불공정행위에서 얻는 잠재적 이익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다만 ‘잠재이익 초과하는 과징금 부과’까지는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최장관 국장은 “이번 과징금 부과 규모도 잠재이익에는 훨씬 못미친다. 공공택지 2건 낙찰 만으로 우미는 매출 7268억원과 이익금 1290억원을 확보했고 총수 2세는 100억원대 차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련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미건설 재재와 관련해서는 과징금을 현행 법 체계 안에서 상한까지 적극적으로 부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주 위원장은 취임 직후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강도를 그 행위에서 얻는 잠재적 이익을 현저히 초과하는 수준으로 높이겠다”면서 “혁신 기업은 키우고, 불공정 착취와 사익편취에 자본을 탕진하는 기업은 엄벌하겠다”고 밝혀왔다. 기업 형사처벌을 줄이고 과징금·과태료 등 금전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와도 맥을 같이 한다.
과징금 실효성 논란은 매년 논란이 되풀이 됐지만 법제도 개선은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담합으로 발생한 불법 매출은 91조6000억원에 달했지만 부과된 과징금은 2조2000억원으로 매출의 2.5% 남짓에 그쳤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훨씬 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 제재 효과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