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서울시 ‘종묘’ 놓고 또다시 충돌
“유네스코서 영향평가 받을 것 요청”
“영향평가 받으면 사실상 사업 중단”
국가유산청과 서울시가 종묘 인근 재개발을 놓고 또다시 충돌했다.
유산청은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네스코측은 고층 건물에 의해 종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권고했다”며 “유네스코측이 세계유산운영센터 지침에 따라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제출하고 센터 및 자문기구에서 검토 등이 완료될 때까지 개발을 중지할 것을 명시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문서는 세계유산센터 명의로 대한민국 대표부를 거쳐 15일 국가유산청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산청은 해당 문서를 17일 오전 서울시에 공문 형태로 발송했다.
허 민 국가유산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오세훈 시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전날 오 시장이 SNS에 올린 글에서 “국가유산청은 보존을 우선하는 행정기관이기에 도시계획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데 대해 “국가유산청은 오로지 보존만 한다고 한 것과 국가유산청을 폄훼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즉각 반박 입장을 발표했다. 대변인 명의 입장문을 통해 “유산청장의 신중한 언행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시는 “이미 대화를 통한 합리적 해결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으나 유산청장은 실무적 협의조차 거치지 않은채 종묘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적 감정을 자극했다”며 “유산청장의 과도한 주장이 오히려 대외적으로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다”고 되받았다.
◆세운4구역 개발 중단되나 = 양측 공방이 갈수록 격화되고 유네스코까지 나서면서 종묘 인근 재개발 사업 앞길이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문화유산 인근 개발사업 최종 승인권한은 국가유산청에 있다. 유산청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사업의 계속 추진은 어렵게 된다. 여기에 유네스코의 유산영향평가 요청까지 나온 상황이라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사업 제동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대로 사업을 세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에 따르면 재개발을 위해 기존 건물 철거까지 모두 마친 세운4구역은 수십년째 사업이 표류하고 있으며 140여명에 달하는 토지주들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금융빚을 떠안은채 사업 속개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변 2구역과 4구역은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이다. 비록 종묘로부터 거리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변 재개발 사업은 승인하고 4구역만 방치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유네스코의 요청은 권고에 불과할 뿐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문화유산 보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유네스코 권고가 주민 삶 개선, 도시계획상 개발 필요성을 모두 덮을 만큼 구속력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양측은 조만간 회의 등을 통해 머리를 맞댈 것으로 예상된다. 유산청은 “조속한 시일 내에 서울시 문체부 국가유산청 등 관계기관이 함께 하는 조정회의를 열자”고 제안했고 서울시는 “현실적인 해법을 위한 회의는 환영한다”며 협의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다만 회의는 공전될 가능성도 있다. 회의 개최의 전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산청은 선 영향평가 수용을, 서울시는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과 병행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한편 유네스코는 우리 정부에 ‘한달 안에 평가 수용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관계 기관들이 해당 논의를 위해 만나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문화계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총출동해 정쟁으로 몰아가면 될 일도 안된다”며 “무조건적인 원형 보존 주장, 무차별적인 개발 논리 모두가 문제인 만큼 문화유산의 현대적 보존과 도시 개발의 병행 방법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