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고용안정 쇠퇴…파나소닉 미쓰비시 흑자 구조조정

2025-11-18 13:00:01 게재

수조원 흑자 내고도 수만명 인원감축 나서, 파나소닉은 주가 반토막도 영향

닛케이비즈니스 “일본식 종신고용 종언”…닛산·시세이도는 적자 구조조정

일본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수조원대 순이익을 내고도 인원 삭감에 적극 나서고 있어 경영위기에 따른 수세적 구조조정도 아니다. 이른바 ‘종신고용’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형 고용제도의 변화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호에서 “흑자라도 사람을 줄이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파나소닉과 미쓰비시전기 등 제조업은 물론, 금융업종에서도 일상적인 인원 감축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구조조정은 지금까지와 다르다”며 “위기도 아닌 평시에 인원을 삭감하는 것은 구조조정의 일상화시대를 개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매체는 또 “흑자 아래서도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의 진화라는 커다란 물결이 현장에 밀려오고 있다”며 “이러한 조류로부터 기업도 근로자도 피해갈 수 없다”고 했다.

도쿄상공리서치가 일본 증시에 상장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9월 말까지 희망퇴직을 모집한 인원은 1만488명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규모(1만9명)를 넘어서는 인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20% 늘어난 수준이다.

더구나 이번 조사에는 닛산자동차가 국내외 사업장에서 모두 2만명 가량을 정리하겠다고 한 인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인원 수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미쓰비시전기 등도 들어가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인원삭감 규모를 포함할 경우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 기업은 1960~7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노조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일본형 노사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종신고용은 정년까지 강력한 고용관계를 통해 근로자의 자발적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자발적 퇴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이 경영상 위기에 몰리자 적지 않은 직원들을 내보냈다. 특히 2009년 한해에만 2만명 이상의 근로자가 희망퇴직 등의 명목으로 직장을 떠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20년 코로나19 확산 때도 1만5000명 이상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는 기업들의 경영상 위기가 인력 구조조정의 주된 이유였다. 이번에 2만명을 삭감하겠다고 밝힌 닛산도 판매부진과 대규모 적자 등에 따른 불가피한 인력삭감에 해당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화장품업체 시세이도 역시 대규모 적자로 상당한 인력의 희망퇴직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처럼 일부 기업이 경영상 불가피하게 인원을 줄이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 흑자 구조조정이라는 분석이다.

혼마 고스케 도쿄상공리서치 정보본부장은 “기업이 위기 상황이 아니고 흑자인 경우에도 인원 삭감에 나서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며 “올해 희망퇴직 등을 실시한 기업 가운데 60% 이상은 흑자를 냈다”고 말했다.

파나소닉홀딩스와 미쓰비시전기가 대표적으로 흑자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나선 경우다. 파나소닉은 2027년 초까지 모두 1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 감축에 나섰다. 전세계에서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의 5%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파나소닉의 지난해 실적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4264억엔(약 4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다마오키 하지메 파나소닉홀딩스 부사장은 “우리에게 주가는 경영성적표와 같은 것”이라며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무엇인가에 손을 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나소닉 주가는 최근 주당 1780엔 수준으로 2000년(3320엔) 최고치의 절반 수준에 그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마오키 부사장은 “투자자들로부터 파나소닉은 성장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며 “경영진이 판단하는 문제인식은 매출 대비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파나소닉의 일반관리비나 판매비 등 비중은 매출 대비 25.6%다. 소니(18.8%)나 히타치(18.9%) 등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영의 우등생’ 소리를 듣는 미쓰비시전기도 상당 규모의 인력 감축에 나섰다. 올해 연간 실적에서 3400억엔(약 3조2000억원) 규모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돼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는 경영상 호조를 보이고 있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최종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회사측은 일단 53세 이상의 정사원과 정년 이후 재고용한 인원 중심이다. 이 회사 전체 종업원(4만2000명)의 25% 수준에 이르는 규모가 희망퇴직의 1차 대상자가 되는 셈이다. 아베 야스나리 최고인사책임자(CHRO)는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 왔다”고 인력감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러한 인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소니와 히타치, NEC 등 대부분 경쟁업체가 대규모 인력 조정에 나섰던 데 반해 미쓰비시전기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닛케이비즈니스는 “파나소닉과 미쓰비시전기 인원감축의 공통점은 과거 경영자들이 (인력 운영에 있어) 안이하게 대응했던 점”이라며 “(일본형 기업의 대표격인) 두 회사의 흑자 구조조정은 종신고용을 보장한다는 일본형 멤버십고용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상공리서치 혼마 본부장도 “코로나19 이후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흑자 아래서도 인원삭감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며 “앞으로 AI의 확대로 이러한 흐름은 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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