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금 0원’ 13년 론스타 분쟁 마감

2025-11-19 13:00:08 게재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3배 차익에도 지연 배상금 요구

2022년 ‘4.6% 지급’ 판정…정부, 3년 만에 뒤집기 성공

‘중재절차 위반’ 판단한 듯…배상금·이자 지급의무 소멸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벌인 외환은행 매각 관련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약 4000억원 규모의 정부 배상 책임이 모두 소멸됐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2012년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만에 나온 결과다.

정부로서는 외환은행 매각으로 2조원이 넘는 이익을 챙긴 론스타에 국민 혈세로 배상금까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던 론스타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을 겪던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1조3834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정부에 이어 2대 주주였던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증자를 포기하고 매각을 추진했는데 인수에 나선 곳이 바로 론스타였다.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격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도록 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은행법 시행령의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하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금융당국이 산업자본 요건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고,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BIS)을 고의로 낮게 보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005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론스타에 넘겼다며 이를 승인한 경제 관료와 은행 경영진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금융당국자들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론스타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외환은행 매각에 나서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000억원대 매각 계약을 체결했으나 정부의 승인이 늦어지면서 무산됐다.

‘헐값 매각’ 의혹 관련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게 당시 금융당국의 입장이었다.

결국 론스타는 2012년에야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매각할 수 있었다. 론스타는 3배 가까운 차익을 얻었지만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며 같은 해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했다.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 규모는 46억7950만달러로 한화로는 6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ICSID는 중재재판부를 구성하고 10년간 심리를 진행한 끝에 2022년 8월 론스타의 주장을 일부 인정해 청구 금액의 4.6%인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론스타측은 배상금이 충분하지 않다며 2023년 7월 판정 취소 신청을 제기했고, 정부도 판정부의 월권과 절차 규칙 위반 등을 이유로 같은 해 9월 판정 취소와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양측의 판정 취소 신청을 받은 ICSID는 2년간 검토 끝에 한국 정부의 승소 판정을 내렸고, 론스타와의 국제소송도 13년 만에 마무리됐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중재판정의 효력은 사라졌다. 현재 환율 기준 약 4000억원에 달하는 배상금과 이자 지급 의무가 모두 소멸됐을 뿐 아니라 론스타측으로부터 소송비용 약 73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ICSID가 자신들이 내린 판정에 대해 전체 취소 결정을 내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중재절차 과정에서 변론권과 반대신문권 등을 박탈하고 전문증거만으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등 절차규칙이 심각하게 위반됐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3일 내란 이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을 비롯한 담당국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재판관들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다만 론스타가 이번 취소소송에 불복해 다시 중재절차를 제기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법무부는 19일 오후 별도 브리핑을 열어 구체적인 승소 이유와 경위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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