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 잠재운 엔비디아 실적

2025-11-20 13:00:02 게재

중국 제외하고도 매출성장 사상 최대치 … AI 인프라 지배력 다시 입증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엔비디아가 시장의 우려를 단숨에 뒤집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며 글로벌 기술주 조정 속에서도 AI 인프라 시장의 절대 강자임을 다시 입증했다.

최근 빅테크의 자본지출 과열 논란, AI 거품 우려, 고평가 부담 등이 겹치며 ‘AI 거품론’이 확산됐으나, 엔비디아는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게 분기 기준 최고 매출을 올렸다. 실적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약 5% 상승하며 시장 신뢰를 재확인했다.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10월 분기 매출은 570억달러로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시장 컨센서스를 크게 웃돈 수치다. 분기순이익도 319억달러로 전년 대비 65% 급증했다. 회사는 다음 4분기 매출 전망을 650억달러(전 분기 대비 약 14% 증가)로 제시하며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몇 주 동안 제기된 ‘AI 투자 피로감’을 단숨에 무력화했다. 투자자들은 대형 기술기업들의 공격적 데이터센터 구축과 자본지출 확대가 단기 수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엔비디아가 고객사들에 전략적 투자를 하고, 그 고객사가 다시 엔비디아 칩을 대량 구매하는 구조를 두고 일부에서는 ‘순환형 거래’라는 비판도 있었다. 마이클 버리 등 유명 투자자들의 경고와 소프트뱅크·피터 틸 계열 펀드의 지분 매각으로 시장 분위기는 한동안 흔들렸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이러한 우려와 달리 실적·전망 모두에서 압도적 성과를 내놓았다. 젠슨 황 CEO는 “AI는 이미 선순환 단계에 들어섰고, 모든 산업을 동시에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분기 전망에서 중국 매출을 아예 제외했다는 점은 시장을 더욱 놀라게 했다. 실적발표(Earnings Call)에서 황 CEO는 “이번 가이던스는 중국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규제로 블랙웰(Blackwell) 칩의 중국 판매가 막힌 상황에서도, 비 중국권 수요만으로도 매출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또 AI 플랫폼의 핵심인 ‘쿠다’(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 CUDA)의 장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CUDA는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AI 학습·대규모 계산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체계다. 쉽게 말해, 엔비디아 칩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일종의 ‘운영 플랫폼’이다.

그는 CUDA 생태계를 활용하면 A100 등 구세대 칩도 6년 이상 사용 가능할 정도로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데이터센터 운영사 입장에서는 투자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황 CEO는 “엔비디아는 더 이상 단순한 게이밍 GPU 회사가 아니라, 전 세계 AI 인프라의 핵심을 구성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오픈AI 등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지분 투자 역시 “결국 엔비디아 기술 도입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FT는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황에서도 데이터센터 매출이 512억달러로 월가 전망치를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했다. 회사측은 중국 맞춤형 H20 칩 판매가 “매우 미미했다”고 밝혔고, 향후 전망치에도 중국 매출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블랙웰 GPU와 차세대 블랙웰 울트라는 이미 “완판 상태”라는 설명이 나왔다.

정책 변수와 공급망 제약은 여전히 리스크로 거론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블랙웰 칩의 중국 판매 허용 계획이 없다고 밝혀 중국 시장 회복은 단기간에 어렵다. 동시에 글로벌 AI 기업들의 설비 투자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어 생산능력 확충이 늦어질 경우 일부 고객사 대기 기간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지적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번 실적이 엔비디아가 단순히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아니라,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구축에 사실상 필수로 사용되는 핵심 공급자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고 평가한다.

AI 모델 개발 기업, 클라우드 사업자,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대부분이 엔비디아 칩과 쿠다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생태계 자체가 이미 엔비디아 중심으로 고착화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AI 버블 논란 속에서도 엔비디아는 또 다시 기대치를 넘는 실적을 제시하며 ‘AI 거품론’을 스스로 잠재웠다. 이번 실적은 AI 인프라 경쟁이 아직 초기 단계임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시장 지위는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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