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깎아주는 조세특례 타당성평가, 80%가 면제
모두 ‘사회·경제적 상황 대응’ … 국무회의만 거치면 가능
국회 예결특위 “평가 받은 6개 사업 중 2개만 긍정 평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이지만 면제신청도 하지 않은 사업도
“불합리한 조세특례를 사전 통제하는 제도 취지에 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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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는 이 사업들을 우선 ‘수시배정대상 사업’으로 선정해 관리하고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결과를 반영해 예산을 배정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고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하지 않은 15개 사업들은 지난 8월 18일에 국무회의 의결, 같은 달 20일에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됐다. 하지만 9월 3일에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엔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다. 인수위 없이 지난 6월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시간적으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국가재정법을 어긴 것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남용하고 국회 심의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고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완료하지 않은 사업은 ‘유아 단계 무상교육 보육 실현’, ‘AI(인공지능) 기반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원’, ‘유통기업 해외진출 지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 ‘의료·요양·돌봄 통합 지원’, ‘AX 실증밸리 조성’, ‘지역거점 AX 혁신 기술개발’, ‘인간-AI 협업형 LAM 개발·글로벌 실증’, ‘협업지능 피지컬AI기반 SW플랫폼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 ‘K-온디바이스 AI반도체 기술개발사업’, ‘SMR 혁신제조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 ‘해양연구선(온누리호) 대체 건조사업’, ‘청년 문화예술 패스’, ‘AI기반 분산전력망 산업 육성사업’ 등이다. 이재명정부의 핵심정책인 인공지능, 연구개발, 방산, 문화와 함께 농어촌 기본소득, 유아기 무상 교육 보육 사업들이 포함돼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고도 적정성 검토 없이 ‘수시배정사업’으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한 것을 두고 “예산의 배정은 집행단계에서 이뤄지는 행정부의 내부 통제에 해당하고 편성된 예산안에 대한 심의는 예산 확정 전에 이뤄지는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외부통제에 해당된다”며 “교육부의 ‘유아 단계적 무상교육 보육 실현 사업’과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등 복지사업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결과에 따라 혜택을 줄이는 등의 조정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또 “사업계획 적정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예산안을 편성해 제출하는 것은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인한 국가 재정의 낭비를 방지하려는 국가재정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재부에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점에 임박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관행을 시정해 내년 상반기까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의 적정성 검토를 완료한 후에 예산안에 반영해 국회에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들은 사업 내역과 사유를 ‘지체없이’ 국회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가재정법을 위반하기도 했다. 보고가 아예 되지 않은 게 환경부의 ‘화성 오산 물 재이용 민간투자사업’이다. 9개 사업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9월 3일 이후에 보고가 이뤄졌다. 결국 법적 기한(9월 3일)에 맞춰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첨부자료’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 내역 및 사유’에 빠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실이 뒤늦게 국회에 통보된 셈이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국가정책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 사업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커 재정낭비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국회 상임위에서 보고 받고 해당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등을 사후적으로 감시,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지체없이 보고토록 한 것은 국회에서 심사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재정법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세특례 예비타당성평가 면제 제도도 무력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조세특례 예비타당성 평가가 면제돼 내년에 반영될 사업은 자녀수에 따른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한도 확대, 고배당기업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예체능 학원비 교육비 세액공제 등이다. 모두 ‘경제·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사항’을 이유로 예비타당성 평가를 건너뛰었다. 예비타당성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업 4개 중 3개가 면제받은 셈이다.
2021년부터 올 8월까지 조세특례 예비타당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31개 사업 중 80.6%인 25개가 ‘면제’를 받았다. 면제 사유는 모두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국무회의만 거치면 가능했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조세특례 예비타당성평가를 받은 사업은 모두 6개뿐인 셈이다. 이 사업들이 예비타당성평가를 받은 결과를 보면 ‘도입 타당’(개인투자용 국채상품 도입 방안), ‘정책성 측면 타당성 인정’(육아친화기업에 대한 통합고용세약공제 혜택 확대, 경단 요건 완화) 등 긍정적 평가를 받은 건 2건뿐이었다. 4건은 ‘타당성 낮음’(3건), 신중 검토(1건) 등으로 나와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이는 정부가 조세특례 예비타당성평가를 기피하는 이유로 해석된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정부는 매년 1~2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세특례 예비타당성평가를 면제하고 법률안을 제출하고 있어 불합리한 조세특례의 도입을 사전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의 취지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조세특례 예비타당성평가 실시는 조세특례 도입 여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정부는 조세특례 예비타당성 면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비타당성 평가 면제사유를 구체화해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국비로 600억원이 지원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디지털 기반 대학 연구혁신 및 인재양성 사업’과 국비지원규모가 400억원(2030년까지 2179억원)인 ‘버티컬AI연구지원 센터’ 사업의 경우엔 국가재정법에 의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받거나 면제신청을 해야 하는 사업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사업으로 지목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