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지지층·의원에 힘 빠진 ‘원내사령탑’
‘원내 업무 통할’ 기능, 사실상 무력화
정청래 “일일이 점검, 챙기겠다” 현실화
‘당원 강화, 대의원 약화’, ‘다수결’ 통과
당헌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당을 대표하고 국회 운영에 관해 책임을 지며, 원내 업무를 통할’하고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소속 국회의원을 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이미 여러 차례 상처를 입었다.
윤리특위를 거대양당 의원 5명씩 배정하기로 했던 것과 ‘특검법 개정안과 정부조직법 통과’를 조율한 거대양당 합의안이 모두 강성지지층의 반발로 파기됐다. 그 이후 정청래 당대표가 지난 9월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무를 보다 더 철저하게 지휘하고 감독하고 체크하도록 하겠다”며 “중요한 당내 상황은 제가 직접 구체적으로 일일이 점검하고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내리더십이 크게 위축됐다. 정책위의장 임면권을 갖고 있는 당대표가 원내 사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휘하고 있는 셈이다.
정 대표가 강성지지층의 지원으로 ‘당대표’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강성지지층의 운신 폭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정청래 대표가 직접 막아섰다. 위원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원내대표에게 권한이 있는데도 정청래 대표가 최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경위를 물어본 것을 ‘충분한 경고’라고 했다. ‘국감 중 자녀 결혼식’ 논란 역시 수면 밑으로 밀어냈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원내 사안들을 당대표가 하나하나 챙기고 주도하는 것에 대해 의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며 “이제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원 중심주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후보뿐만 아니라 당대표, 최고위원 선거가 강성 지지층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는 더욱 강성지지층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최고위원을 비롯한 추미애 법사위원장 등 강성 의원들이 지방선거 출마를 예고해 놓고 있고 당대표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정 대표 역시 강성지지층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정 대표가 당대표 재선을 위해 강성지지층의 입김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선거 경선 후보자가 4인 이상일 경우의 예비경선과 광역의원·기초의원 비례대표 후보 순위 선정에 권리당원 투표 100% 도입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이번주중 확정할 예정이다. 서울시장, 경기지사 등에 출마할 의원들의 ‘강성지지층만을 바라본 호소’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당 지도부를 선출할 때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반영 비율을 ‘20 대 1 미만’에서 ‘1대 1’로 바꾸기로 하는 방안이 저항을 받고 있는 것도 ‘강성지지층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한몫을 하고 있다.
‘대의원’이라는 ‘대의’를 외면한 채 권리당원에게만 지도부 선출을 맡기게 되면 적극 참여하는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달 당비(1000원)을 낸 당원들에게 당원중심주의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투표에서 전체 권리당원 약 164만7000명 중 16.8%인 27만6589명이 참여했고 이중에서 86.8%인 24만116명이 찬성의견을 냈다. 결과적으로 전체 유권자의 14.6%만 찬성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정 대표는 “당내 민주주의가 당원의 손으로 완성되는 순간과 과정을 우리는 보고 있다”며 “90%에 가까운 당원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해석했다.
그러고는 이언주, 한준호 최고위원의 ‘명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로 최고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재고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당무위, 28일 중앙위를 각각 열어 이번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한다는 일정을 밀어붙일지 주목된다.
정 대표는 이재명 대표 때부터 요구해왔던 ‘당원 민주주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강성당원에 흔들리는 민주당’이라는 지적을 극복하긴 어려워 보인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