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연계 독서법
독서, 탐구활동 심화부터 진로 탐색까지 ‘만능키’
교과연계 독서, 단편소설 반복 읽기부터 수학 원리 심화까지 … 과목별 독서 전략 달라
대입에서 숫자 이상으로 글자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 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생의 모습이 반영된 학생부 기록의 힘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주요 대학은 학생부교과전형과 정시전형에도 학생부의 성적 외 요소를 반영하는 추세다. 자기 주도적으로 관심 분야를 깊이 파고든 태도와 역량을 살피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1부터는 내신이 5등급제로 평가되며 수능 출제 범위 또한 고1에서 고2 과목으로 바뀌면서 학생부 기록으로 학생의 역량을 가늠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독서 활동이 다시금 강조되는 모양새다. 심화 학습이나 탐구 활동, 진로 탐색과 연계하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고교에서는 독서가 곧 학습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를 여전히 고민한다는 데 있다. 내일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지난 3년간 교과 연계 적합서를 통해 교과별 자문 교사단 연계 전공 선배의 추천 도서와 활용법을 소개해왔다. 선배들이 독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교과별로 정리해봤다.
◆국어, 작품 하나로 재미·독해력 잡고 타 교과 탐구 주제도 발굴 = 단편 소설 위주로 읽되 한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며 깊이를 더했다는 사례가 많다. 서울과학기술대 영어영문과 김세원씨는 “최소 3회독을 했는데 첫 번째는 모르는 단어를 유추하며 읽고 두 번째는 핵심 단어를 찾고 기록하며 읽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김수빈씨는 ‘문학’ 시간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고현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유행의 변천으로 현대 사회 현상을 밝히는 고현학 개념을 이해했다. ‘화법과 작문’에서는 ‘데미안’을 영웅·성장 소설과 비교했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나하은씨는 “교과서와 연결된 지점을 찾아 서평이나 논설문을 쓰고 해당 주제·자료를 차용해 보고서도 썼다”며 “관련 내용을 깊이 파고든 논문이나 반대 의견을 따로 찾아 비교해보며 내 의견이나 감상을 덧붙이면 책의 내용을 훨씬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수학, 수학적 원리 파고든 후 실생활·과학에 접목 =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박소윤씨는 “독서로 수학에 쉽게 접근해보라”며 “‘X의 즐거움’을 읽고 근의 공식을 고대에 어떻게 풀어냈는지, 산술과 방정식 항등식 함수가 무엇인지 설명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대 자유전공학부 오윤채씨는 사이클로이드를 책으로 접한 후 직접 증명해보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식이었다. ‘확률과 통계’와 ‘물리학Ⅰ·Ⅱ’를 이수하지 않아 통계와 관련한 책을 읽고 물리 현상과 엮은 프로젝트도 했다. 켄텍(KENTECH 한국에너지공대) 2학년 오수현씨는 관련 내용을 쉽게 정리한 책을 먼저 읽으면 흥미도 높아지고 아이디어도 풍성해진다고 밝혔다. 미적분 개념의 실생활 활용을 고민하다 ‘미적분의 쓸모’를 읽고 누적된 데이터로 상황을 예측할 때 미적분이 쓰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적분을 활용한 기상 예측을 주제로 추가 탐구했다고 전했다.
◆사회, 뉴스에 교과 개념 적용하며 사회 현상 원리 파악 = 서강대 심리학과 박희준씨는 "독서는 제 깊이를 보여줄 활동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고3 때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을 읽고 팀을 꾸려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발표했다. 책에서 한국 사회가 노력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는데 이를 청소년과 연계해 행복도와 자살률을 살펴 인과 관계를 분석했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지혜씨는 ‘동물농장’을 읽고 독재 정치가 형성되는 과정을 탐구한 후 심화 보고서를 작성했고 ‘세계문제와 미래사회’에서 셰일 가스를 배울 때 ‘국제정세의 이해’를 읽고 국제 유가에 대한 심화 탐구를 진행했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최정윤씨는 “사회 공부를 할 때 교과서에 나온 개념이나 여러 사건 현상을 암기하기 힘들다면 관련 도서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지리, 인구 소멸부터 국제 분쟁까지 세상 흔드는 지리의 힘 발견 = 고려대 지리교육과 윤경호씨는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을 읽고 현실을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지리의 역할이 크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지리교육전공 박정윤씨는 지리 관련 도서는 주제별로 내용이 명확히 구분돼 여러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선별해서 읽었다고 소개했다. 국경 전쟁에 관한 탐구를 한다면 수자원 분쟁, 이주, 천연자원 분포에 관한 책을 찾아봤다. 서울대 인류학과 길현영씨는 “‘통합사회’부터 시작해 ‘세계지리’ ‘지역이해’까지 지리와 관련된 모든 과목에서 교과서와 관련 도서를 토대로 수업이 진행됐는데 점점 책에 빠져들었다”며 “교과서에 건조하게 서술된 한 문장 안에 지리와 지형 인간의 연결고리가 농축돼 있다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윤리, 암기 어려운 과목? 원문 읽기·비교 탐구로 이해 높여 =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이기람씨는 원전과 관련 도서를 통독했다고 말했다. ‘생활과 윤리’에서 칸트가 나오면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도 읽었다. 교과서엔 짧게 실린 사상가의 주장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책의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조합하며 융합적인 사고력을 키웠다고 전했다.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이기쁨씨는 ‘생활과 윤리’에서 맹자를 접한 후 ‘정치와 법’에서 배운 로크와 유사하다는 생각에 둘을 비교하는 활동을 했다. 로크의 ‘통치론’을 읽고 당시 이슈와의 연결점도 찾아보고 추가 의문점이나 비판·반박이 나올 부분은 더 조사했다. 가톨릭대 국제학부 심영예씨는 “교과서는 한정된 페이지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다 보니 압축해서 핵심만 다룬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교과 개념과 관련된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한 책을 읽으면 분명 해결책이 보인다”고 조언했다.
◆물리, 까다로운 물리 개념 쉽게 접근해 심화·확장하는 징검다리 = 광주과학기술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이영택씨는 "물리가 어렵다면 과학 도서로 접해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교과서에서는 단어 하나 또는 한두 장에 담은 개념·용어나 이론을 수십 수백 장으로 풀어내니 이해하기 훨씬 좋다는 것이다. 아주대 전자공학과 윤성주씨는 교과서에서 흥미 있는 키워드를 발견하면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봤다고 소개했다. 중앙대 기계공학부 황경환씨는 로봇 기술을 다룬 책뿐만 아니라 로봇과 윤리·사회를 연관 지은 책도 많이 읽었다. 그는 "기술도 사람을 위한 과학이 되려면 철학과 윤리라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며 "로봇에 관심이 있다면 로봇 윤리뿐만 아니라 로봇 발전사 로봇을 다룬 문화 콘텐츠 등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조언했다.
◆화학, 생활 속 화학 찾아 흥미 높이고 최신 정보 더해 심화 학습 =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화학공학과 이현규씨는 고1에서 고2 땐 ‘이토록 재밌는 화학 이야기’ 같은 책으로 실생활 속 화학에 흥미를 느끼고 2에서 3학년 땐 ‘원자력이 아니면 촛불을 켜야 할까’를 본 후 ‘탈핵학교’까지 읽었다고 소개했다. 서울여대 화학과 최윤서씨는 ‘심화국어’ 시간엔 핵폐기물 처리법을 다룬 책을 읽고 전 세계의 핵폐기물 처리 상황과 활용 기술을 조사했다. 가톨릭대 바이오메디컬화학공학과 박지빈씨는 방학 때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주요 내용과 궁금증을 정리해 다음 학기 탐구 주제로 많이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독서와 수업을 연계하니 기억에 오래 남고 어떤 지식이나 사건을 바라볼 때 다른 것과 연결해 이해하는 등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생명과학, 지적 호기심 충족 넘어 생명 윤리 고민 = 고려대 의과대학 김민서씨는 잘 모르거나 관심 있는 내용이 생기면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국어 시간에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을 읽고 행복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다가 행복의 쳇바퀴 이론을 접한 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뇌 회로가 하는 일이 아닌지 의문을 품고 ‘스스로 치유하는 뇌’를 읽으며 신경 가소성 개념을 주목했다고 전했다. 덕성여대 약학과 박소현씨는 ‘생명과학Ⅰ’에서 스트레스를 주제로 삼아 ‘스트레스의 힘’을 찾아보고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과 인체 내 신경 전달 과정 병리적 현상을 조사했다. 서울대 의예과 유지완씨는 ‘쉽게 쓴 후성유전학’을 읽은 후 생명과학적인 유전을 넘어 사회의 불평등이 유전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불평등 심화 문제를 분석한 ‘불평등의 킬링필드’를 읽고 나선 평등과 정의가 무엇인지와 양극화 시대 의사의 역할을 고민했다.
◆지구과학, 미지의 영역 다가갈 과학적 상상력 길러 = 경상대 지질과학과 이혁준씨는 공부하기 싫을 때 책으로 도피했다고 털어놨다. 지구과학은 다루는 시공간의 범위가 매우 넓고 미지의 세계가 많다. 국립공주대 대기과학과 고동현씨는 대기과학과 천문학 등 하늘을 다룬 책은 뭐든 읽었다고 전했다. ‘시그널 기후의 경고’를 읽고 지구 온난화가 실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고 대기과학의 역할과 필요성을 담은 탐구 보고서도 썼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홍동기씨는 우주는 매우 방대하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많다며 확보한 자료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시각을 만드는 데 역사 철학 등 인문학부터 과학 교양서 고전 문학 현대 SF 소설 모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독서 활동 어떻게 시작할까. 선배들이 답한다 = 교과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외대 Language&AI 융합학부 김민서씨는 “수업 내용과 연계된 책을 추천받고 자연스레 관심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탐구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강대 경제학과 신유림씨는 "스스로 취약하다고 여긴 과목과 관련된 책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었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메타버스융합콘텐츠전공 이효은씨는 "진로를 정하지 못해 교과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읽어나갔다"고 말했다. ‘사회문제탐구’ 시간에 ‘백신 거부자들’이라는 소설을 읽고 SNS에서 가짜뉴스 등 신뢰할 수 없는 정보가 확산되기 쉬운 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탐구하다 콘텐츠의 역할을 고민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대해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국수현씨는 점심시간을 활용한 과학 독서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한 권이라도 꾸준히 읽어보길 추천했다. 아주대 약학과 염승민씨는 수행평가 등 수업 시간에 독서 관련 활동이 많아 최대한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