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까지 나섰다…환율방어 총력대응
구윤철 “4자협의체, 연금수익성·외환시장안정 조율”
당국, 수출대기업-주요증권사-국민연금 연쇄접촉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위협하는 가운데 경제부총리까지 외환방어전에 투입됐다. 말 그대로 총력전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6일 오전 세종정부청사에서 긴급간담회를 갖고 “정부는 외환시장의 투기적 거래와 일방향 쏠림 현상에 대해 주의 깊게 모니터링 하고 있으며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경우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1477월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구 부총리 언급 뒤 다시 1450원대로 떨어졌다.
구 부총리는 간담회에서 국민연금과 환율 4자협의체를 구성하게 된 배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야당 등의 “국민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환율방어에 동원하는 것”이란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 부총리는 “국민연금은 1400조원 수준인데 보유한 해외자산이 정부 외환보유액보다 많은 상황”이라면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과정에서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4자협의체는 국민연금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조율하기 위한 논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기금규모가 3600조원 이상으로 커지는만큼, 국민연금의 해외투자가 국민경제나 외환시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율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경제부총리까지 환율방어전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그만큼 사정이 긴박해서다. 앞서 외환당국은 지난 14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수출 대기업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 21일 오후에는 9개 주요 증권사까지 소집했다. 이어 25일에는 기재부와 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이 참여하는 4자 외환협의체를 꾸렸다고 공개했다.
통상 외환당국은 시장이 출렁이면 시중은행이나 대형 수출기업, 국민연금 정도만 비공식 접촉해왔다. 그래도 안되면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구두개입으로 시장을 진정시켜왔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최근 환율을 밀어올린 배경에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떠오른 요인이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의 해외주식 결제 수요 급증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01억달러(약 14조8700억원)였던 개인투자자 해외 주식 순매수는 올해 들어 287억달러(약 42조2600억원)로 3배가 늘었다. 지난달에만 68억달러를 순매수, 역대 최대 월간 기록을 세웠다.
수출기업들이 강달러를 의식, 달러보유를 늘리고 있는 점도 수급을 어렵게 하고 있다.
기업의 외화예금은 지난해 871억2000만달러 규모였다. 하지만 올해 9월 922억60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기업이 수출대금을 달러로 받은 뒤 묶어둔 규모가 늘고 있어서다. 당분간 ‘강달러-원화약세’를 예상되는데 굳이 달러를 원화로 바꿀 이유가 없어서다.
현재 한국(연 2.50%)과 미국(연 3.75~4.00%)의 기준금리가 역전돼 있는데,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환율 불안 요인이다. 또 관세협상에 따라 3500억달러 대미 투자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면 그만큼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커질 것이란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단기처방만으론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진 것은 미국의 주가상승과 세계적 강달러 기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내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 부총리도 “궁극적 해법은 국가경쟁력을 높여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