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대통령 “더 늘려라” 지시에 복지부 졸속 의대 증원
3000명→5000명→1만명 계속 늘어나
‘현재·미래 부족 의사’ 단순 합산해 추계
의대 증원 논의 초기 보건복지부는 연 500명씩 단계별로 증원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증원 규모 확대와 일괄 증원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의대 증원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감사원에 따르면 2023년 6월 복지부 장관이 2025~2030년 6년간 500명씩 총 3000명 증원안을 보고하자 윤 전 대통령은 “1000명 이상은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10월 2025~2027년 3년간 1000명씩, 2028년 2000명, 4년간 총 5000명 증원안 보고에도 윤 전 대통령은 “충분히 더 늘려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대통령실 의중에 따라 복지부는 ‘5년간 2000명씩 총 1만명 증원’ 방안을 발표했다.
감사원은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감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2월 복지부가 발표한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은 부적정한 추계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복지부가 의대 증원 규모 결정의 근거로 활용한 ‘2035년 부족 의사 수 추계’의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했고, 의료현안협의체 협의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도 미흡했다며 개선 방향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복지부는 2035년 부족 의사 수 추계 과정에서 의료취약지 부족 의사 수를 현재 시점 부족 의사 수로 해석하고, 시점이 다른 현재·미래 부족 의사 수를 단순 합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는 2035년 부족 의사 수를 약 1만5000명(현재 5000명+미래 1만명)으로 추계했는데 현재 부족 의사 수 5000명의 산출 근거가 된 A 연구는 전국을 70개 권역으로 구분, 자체충족률이 전국 평균에 미달하는 취약지(31개)에서 전국 평균 수준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수를 도출한 내용이었다. 이 연구는 지역 간 의사수급 불균형을 나타낸 것으로, 현재 전국 총량 측면의 부족 의사 수로 보기 어렵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또한 설령 현재 부족 의사 수가 5000명이라 하더라도 이를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효과를 반영해 보정하지 않고 2035년 부족 의사 수 1만명과 단순 합산해 총 부족 의사 수가 부정확하게 산출되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초저출산, 근로시간 감소, 고령층 의료이용 감소 추세 등 최신 경향을 반영하면 부족 의사 수가 1만650명에서 5841명으로 줄어드는 내부 추계 결과가 있었는데도 이를 면밀히 검토·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의료계의 의견수렴 절차는 생략됐다. 2020년 9.4 의정합의에 따라 정부는 의대 증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을 추진하지 않기로 의협과 합의했지만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증원 규모’에 대한 사전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심의 과정도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2024년 2월 열린 보정심 회의에서 복지부는 안건에 ‘2035년 수급 전망(1만5000명)을 토대로 2000명 증원’ 등 간단한 내용만 기재하고 가정에 따라 부족 의사 수가 크게 달라진다는 등의 구체적 내용은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복지부는 회의 시작 1시간 후 정원 확대 방안을 브리핑하기로 사전 공지하고 그 일정에 따라 회의를 진행해, 결론을 정해놓고 회의를 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에 따라 복지부에 향후 의대 정원 조정 추진 과정에서 ‘부족 의사 수 추계 문제점 분석 결과’를 참고하고 실질적 의견수렴·심의를 하도록 통보했다.
교육부에는 의대 신규정원 대학별 배정 과정에서 배정기준을 일관성 없이 적용해 대학별 정원 배정의 타당성·형평성이 저해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 2월 국회가 ①의대 정원 증원 결정 ②의대 정원 배정, ③의료공백 대책 ④의대생 휴학처리 금지 및 서울대 의대 감사 ⑤교육여건 준비 ⑥의학교육평가원 관리·감독 등 증원 추진 과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감사원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그 적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20일간 복지부, 교육부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했다.
정부가 2027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을 위한 의사 인력 수급추계를 진행 중이어서 향후 정원 결정·배정 과정에 감사결과를 반영할 필요가 있고, 지난 정부 의대 증원 및 정원 배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큰 점을 고려해 감사원은 6개 감사 분야 중 ①의대 정원 증원 결정 ②의대 정원 배정 과정에 대한 감사결과를 우선 처리했다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