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진정한 내란사태 극복의 길

2025-11-28 13:00:01 게재

다음주 수요일이면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만 1주년이다. 그날 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첫 1보를 접하고 턱도 없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가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명백한 헌법 위반이고 국민 상식으로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은 내란 기도였음에 비춰 진즉 엄정한 법적 심판이 내려졌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만 결심공판이 끝나 내란우두머리 방조 및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형이 구형된 상태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핵심 피의자들의 재판은 법 기술을 동원한 피고인측의 지연작전에 휘말려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윤 전 대통령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어떻게 저렇게 자격 미달의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게 됐을까 하는 참담함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증인들의 일관된 증언과 물증이 제시되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변명과 부인을 늘어놓거나, 불리한 사항은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비겁하고 비루한 행태로 일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의 조사와 기소로 드러난 혐의 사실들에서도 아연케 하는 일들이 많다.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된 윤 전 대통령 재판

필자 주변에는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한 무리수를 뒀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 답은 분명하다. 윤 전 대통령 자신과 아내, 그리고 처가의 ‘사법 리스크’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서 저지른 비리들로 권좌에서 내려가면 법의 칼날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유일한 방법은 장기집권이고, 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들고 나왔다고 봐야 한다.

거대 야당 민주당의 잦은 탄핵소추안 제기 등 국정 발목잡기는 구실에 불과했다. 윤 전 대통령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앞세워 중앙선관위를 접수하려고도 했다. 보다 결정적인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시도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북 간 국지전이나 더 큰 규모의 군사충돌을 불러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도박을 벌인 것이다. 내란특검은 이에 대해 형법상 외환죄인 일반이적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이런 혐의까지 드러났는데도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세력과 동조하며 내란세력과 단절할 기미가 전혀 없다. 국민의 안위와 경제 발전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이 실패해야 자신들의 살길이 열린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국힘의 이러한 노선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대장동 항소포기, 부동산 악재 등 여당의 잇단 헛발질로 지지도가 내려가도 국힘 지지도는 20%대 초중반에 장기간 정체돼 있다.

최근에는 대구경북(TK)지역에서조차 중도층과 20~30대 층을 중심으로 이재명 대통령 지지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극열 지지층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당내 헤게모니 장악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경고인 셈이다.

물론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내란극복을 위해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장동 1심 판결 항소포기만 해도 그렇다. 핵심 피의자들의 잇단 폭로로 대장동 2차수사팀의 조작·강압수사 정황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2차 수사 과정에 대한 감찰, 나아가 수사도 불가피해질 수 있다. 그런데 조급하게 항소 포기를 선택함으로써 울고 싶은 검찰의 뺨을 때려준 격이 되고 말았다.

여야 모두 현재 모습 되돌아볼 시간 필요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강경노선은 민주당 강성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의 우려를 키운다. 수세에 몰려있는 야당이 숨 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며 보다 대국적으로 나아가는 게 내란사태를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까. 내란사태 1주년을 맞아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계성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