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 달러수급 안정 위한 4대 정책과제 추진한다
정부, 수출기업 환전 점검 … 지원책 논의
증권사 등 해외투자 현황도 실태점검 실시
연말완료 국민연금 외환스와프 연장 추진
4자협의체서 연금투자 뉴프레임워크 논의
정부가 외환수급 안정을 위해 4대 정책과제를 선정, 관련부처가 협업해 계속 점검·조율하기로 했다. 4대 정책과제는 △수출 기업의 환전 및 해외투자 현황 △증권사 등의 해외투자 관련 실태점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연장추진 △국민연금 해외투자의 뉴 프레임워크(New Framework) 논의 등이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전날 △복지부 △산업부 △금융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과 함께 외환시장의 구조적 여건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했다. 기재부는 “회의 참여주체들은 외환수급의 안정화를 위한 정책과제들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기업 보유 달러재고 주목 = 우선 외환당국은 수출기업의 환전과 해외투자 현황을 정기점검하고, 정책자금 등 기업지원 정책수단과 연계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고환율이 진정되지 않는 한 배경에는 수출기업들이 보유한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업의 외화예금은 최근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업 외화예금은 871억2000만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9월까지만 922억6000만달러까지 급증했다. 기업이 수출대금을 달러로 받은 뒤 환전을 하지 않고 있어서다. 당분간 ‘강달러-원화약세’ 기류가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기업의 원화 환전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의 달러 거래를 대행하는 은행의 달러 중개 거래 한도를 늘려주는 방안이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외환당국은 지난달 14일 주요 수출 대기업을 불러 환율 상황을 점검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한화오션·HD한국조선해양 등 주요 수출기업 재무담당자들이 참석해, 달러를 시장에 조금 더 내놓거나 환전 시점을 조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논의했다.
이어 18일에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등 5개 수출기업 경영진과 만나 “외화 수급 개선을 위해 긴밀히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을 원화로 환전해달라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시원찮다. 환율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선뜻 달러 매도에 나서기 어려워서다.
이 때문에 이를 상쇄할만한 정책적 지원대책이 제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일각에서는 ‘자본 리쇼어링’ 등 기존 정책 확대방안도 거론된다. ‘자본 리쇼어링’은 해외 자회사가 거둔 소득을 국내로 들여오면 세제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개인 해외투자도 실태점검 = 정부는 또 금감원을 통해 증권회사 등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해외투자 관련 투자자 설명과 보호의 적절성 등에 대한 실태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기간은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다.
외환당국의 이번 실태점검은 급증한 개인 해외투자를 외환시장 안정과 배치되지 않도록 조율해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실제 미국 등 해외증권시장의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해외시장으로 돌아선 점도 최근 외환수급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해 101억달러(약 14조8700억원)이었던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순매수는 올해 들어 287억달러(약 42조2600억원)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달에만 68억달러를 순매수하며 역대 최대 월간 기록을 다시 썼다. 지난달 무역수지 흑자 60억달러보다 큰 규모다.
하지만 해외투자 여부는 개인 투자자의 선택 문제다. 다만 외환당국은 증권사의 통합증거금 시스템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주요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결제 수요를 매일 오전 9시쯤 동시에 환전 주문을 낸다. 외환당국은 이 구조가 장 초반 환율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9시 쏠림’의 핵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1일 주요 증권사에 하루 평균환율(MAR)로 정산하거나, 주문 즉시 환전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확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국민연금과 손발 맞추겠다는 외환당국 =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또 다른 정책과제는 국민연금과의 투자조율이다.
현재 외환시장의 가장 ‘큰 손’은 국민연금이다. 올해 8월 말 기준 해외주식 486조원, 해외채권 94조원, 대체투자 214조원 중 해외 비중을 포함해 전체 기금 1322조원 중 해외 자산은 최대 60%로 추산된다. 사실상 지난달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4288억2000만달러(26일 환율 기준 630조8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국민연금이 수익률을 위해 지난해부터 해외투자를 크게 늘린 상황이 세계적 달러 강세 기류와 맞물려 우리 돈값(원화가치)의 하락을 촉진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조화하기 위해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 구축을 위한 논의를 개시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운용 체계 개편과 더불어 단기적인 외환수급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방침으로 받아들여진다.
4자 협의체(기재부-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급등한 환율을 안정시키고,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의 막대한 해외투자가 향후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운용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이 향후 연금 지급 시기에 대규모 해외자산을 회수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환율 불안도 장기적 관점에서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정부는 올해 말 만료 예정인 한국은행과 국민연금간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을 위한 세부협의 등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은과 국민연금은 연간 650억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다. 국민연금이 달러를 한은에서 직접 조달하는 방식으로, 환율 방어 수단 중 하나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