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사법행정위원회 도입은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첫걸음
지난 11월 25일 여당이 사법개혁안을 발표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여러 쟁점들이 이야기됐지만 제왕적 사법권력을 독점해 대법원장의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해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비법관 위원들도 참여시켜 사법행정에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안이 핵심내용 중의 하나다.
사법행정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 모두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현직 법관 외에도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식이 풍부한 비법관이나 비법조인을 포함시켜 위원회 구성에 다양성을 갖추겠다는 방침이다. 즉 위원 지명이나 추천권을 변호사단체나 법학교수회 등에 분배해 사법행정의 폐쇄성을 타파하고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벌써 대법원에서 위헌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 조항을 사법권독립에 관한 조항이라고 보면서 법원에 속하는 '사법권'에는 재판권뿐만 아니라 사법행정권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사법행정권을 법원이 아닌 사법행정위원회에 주고 있는 개혁안을 위헌이라 주장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제’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
그러나 헌법은 제101조 제1항에서 법원에 사법권을 귀속시키는 조항을 두고 있을 뿐 어떠한 국가기능이 사법권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래서 학설이 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다수설인 ‘실질설’은 헌법 제101조 제1항의 ‘사법권’ 개념을 국가기능의 내용에 따라 실질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학설이다. '사법권'이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독립적 지위를 가진 중립적 기관이 무엇이 법인가를 인식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의 유지와 법적 평화에 기여하는 국가작용’이라고 정의 내린다.
따라서 '사법권'을 ‘재판권’으로 보며 사법행정과 같이 실질적 의미의 사법에 속하지 않는 과제는 헌법상의 사법권에 속하지 않으므로 법원이 아닌 다른 국가기관이 이를 이행할 수 있다고 본다.
백번 양보해 대법원 주장처럼 사법행정권이 헌법 제101조 제1항의 '사법권'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사법행정위원회에서 법원의 인사에 관해 심의·의결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권을 침해하지 않으면 위헌이 아니다. 개혁안 제1안에 따라 대법원장이 직접 사법행정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경우는 당연히 위헌이 아니고, 제2안에 따라 위원장을 외부 위원 중에서 추천을 받아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하면서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결정 권한을 유지시키는 장치를 두면 되기 때문이다.
비법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위원회에 법관인사에 대한 모든 권한이 집중된다면 인사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부의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우므로 사법행정위원회의 비법관화가 위헌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주권원리에 따라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모든 국가기관의 모든 행위에 민주적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관의 인사 등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는 사법행정위원회에 비법관 위원 수를 확대하는 것은 비법관 위원을 통해 법관 인사에 민주적 통제를 가하는 것으로서, 위헌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주권원리를 법관 인사에 구현하고 ‘사법의 민주성’을 확대하는 조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법행정위원회제도에서도 비법관 위원은 사법행정에 국민의 뜻을 담아내는 ‘민주적 통제의 통로’로서 잘 활용되고 있다.
사법행정권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오랫동안 사법제도를 연구해온 필자가 봤을 때 우리 사법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후진적이다. 국민들의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도 사법부는 꼴찌 다음이다.
분명한 것은 전국 3200여명에 이르는 모든 법관에 대한 임명권 보직권 근무지지정권 등 인사권 전반을 대법원장 한 사람이 독점하는 소위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단언컨대 사법행정위원회 도입은 사법행정에 있어서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권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시급히 돌려줘야 한다. 근거없는 위헌주장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