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AI시대 전력은 철학 아닌 숫자다
‘인공지능(AI) 제조업’을 강조하는 정부의 청사진은 화려하다. 로봇 자동차 조선 가전·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신속하게 AI 대전환을 이루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에 따라오는 현실적인 질문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AI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냉각시스템, 무정전전원장치(UPS) 등을 포함하면 단일 시설 하나가 중소도시 전력소비를 넘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데이터센터 수요와 발전 전략을 분리된 전혀 다른 주제로 취급한다.
현실적인 해법은 발전소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배치하는 것이지만 기업들은 이를 선호하지 않는다. 인적·네트워크·보안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전력공사는 전력계통 부담을 이유로 수도권 데이터센터를 제한하고 있다. AI 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 기조와 모순된다.
전력 공급도 불투명하다. 정부는 발전원으로 재생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런데 태양광의 이용률은 20% 내외다, 1GW를 확보하려면 4~5GW 설비를 세워야 한다. 풍력은 입지제한이 크다. 이를 연결할 전력망도 문제다. 주민수용성 문제로 송전탑 하나 올리는 것조차 수년간의 갈등과 소송을 동반한다.
원전과 가스 정책은 혼란스럽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 원전 2기 건립과 관련해서 정부가 부정적 입장을 보이며 공론화방안 여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불필요한 ‘탈원전 재현’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의 완충 역할을 할 가스발전은 배제하는 분위기다.
비용은 더 직접적인 문제다. 데이터센터 확장은 송전망·변전소·발전시설 증설로 이어지고, 이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집중 지역의 전기요금이 폭등했고, 요금인상에 따른 연체로 단전이 급증했다.
우리 정부는 “산업용 요금은 인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산업용은 전체 전력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동결한 채 전력인프라를 확충하려면 그 부담은 가정용·소상공인·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원칙적 구호만 존재한다. ‘AI 제조강국’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중립’….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을 원하고, 산업은 24시간 무중단 전력을 요구한다. 이는 비용을 수반한다.
AI 시대의 전력은 철학이 아니라 숫자다. 용량·설비·망·요금·수용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AI 제조업은 구호로 남고, 데이터센터는 해외로 떠나며, 국민은 비싼 전기요금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중심에 둔 실용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