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미국 원자력 부흥과 AI 시대

2025-12-02 13:00:01 게재

트럼프행정부는 지난 10월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원자로 도입을 위한 800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여러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약은 연방정부, 웨스팅하우스, 브룩필드 자산운용, 우라늄 연료 공급업체 카메코가 참여하는 파트너십으로 구성되며,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브룩필드와 카메코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원전 4배로 늘리는 트럼프정부 행정명령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5월, 향후 25년간 대형 원자로와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 건설을 가속해 원자력 발전을 4배로 늘리겠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규모 원전 확장 계획은 여전히 논란이 많다. 지난 1년간 전력망에 추가된 전력의 약 90%가 풍력·태양광·배터리에서 나올 만큼 재생에너지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신형 원자로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비싸고, 800억달러가 어떻게 사용되며 누가 부담할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웨스팅하우스도 구체적 계획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행정부는 신규 원전 승인 절차를 신속화하려 하지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NRC 위원 5명 중 2명이 임기 전에 떠났으며 한명은 행정부에 의해 해임돼 업계에 충격을 줬다.

신규 프로젝트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를 사용할 예정이며 이는 조지아주에서 수십년 만에 완공된 두 기의 원전에 적용된 기술이다. AP1000은 2000년대 초 ‘원자력 르네상스’의 핵심기술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완공된 것은 조지아 웨인즈버러의 두 기뿐이었다. 350억달러가 투입돼 예산을 200억달러 이상 초과했고 완공도 수년 지연됐다.

1990년 이후 새로 건설된 원전은 단 두 곳뿐이며 모두 예산 초과와 지연 끝에 최근 2년 내 가동을 시작했다. 현재 28개 주에서 운영 중인 94기 대부분은 1967~1990년 사이 건설돼 전체 전력의 약 20%를 생산한다.

정부·기업·대중 사이에서는 지금이 원자력 르네상스를 추진할 적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형 원전 건설에 10년 이상과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기존 원전 업체와 신생 기업, AI 중심 기술 산업의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원자력 부흥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 산업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핵심 과제가 되면서 원자력의 매력은 커졌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부 자유주의자와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수용도가 높아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뉴섬 주지사가 마지막 원전인 디아블로 캐년 수명 연장을 지지했으며, 바이든행정부도 이를 후원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SMR, 핵융합, 폐쇄 원전 재가동, 기존 원전 수명연장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구글과 넥스트에라는 5년 전 폐쇄된 아이오와 듀안 아놀드 에너지 센터 재가동에 협력 중이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컨스텔레이션은 2028년 쓰리마일아일랜드 1호기를 재가동할 계획이다. 메타는 컨스텔레이션과 일리노이 클린턴 원전과 20년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과제로 남아

원자력 부흥에는 오래된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저장·관리·처리하는 문제다. 현재 미국에는 9만5000톤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가 임시 보관 중이며, 이중 약 1만톤은 무기 프로그램에서 유래했다. 연료는 39개 주 79개 부지의 수조나 건조 저장통에 보관되고 매년 약 2000톤이 추가된다. 에너지부는 상설 핵폐기물 시설을 마련하지 않아 납세자들은 매년 최대 8억달러를 공공요금 회사에 지급하고 있다. 1998년 이후 총액은 111억달러에 달하며, 향후 445억달러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스타트업 딥 아이솔레이션 뉴클리어는 지하 매장 개념과 석유·가스 프래킹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핵폐기물 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심층 시추 폐기’라고 불리며, 지하 수천 피트 깊이에 18인치 직경의 수직 터널을 뚫고, 이후 수평 구간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길이 16피트, 직경 15인치, 무게 6000파운드의 부식 방지 용기들이 핵폐기물을 담아 수평 구간으로 내려가 나란히 쌓이면 수천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다.

딥 아이솔레이션의 CEO 로드 발처는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와 퇴역한 원자로 부지에 시추공을 공동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약 80%의 부지가 근처에 양질의 셰일이나 화강암 지층을 갖추고 있다”며 “폐기물을 멀리 운송할 필요가 없고, 고속도로나 철도 사고로 인한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행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차세대 핵기술이다. 1940년대 중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개척된 완전히 다른 원자력 기술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우라늄과 기타 원소를 추출하고 이를 새로운 연료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SMR에 활용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오픈AI CEO 샘 알트먼과 피터 틸의 벤처 캐피털 회사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오클로 회사는 9월 테네시 오크리지에 첨단 연료 재처리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16억8000만달러를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회사는 테네시 밸리 당국과 계약을 체결해 “자사 현장에 보관된 사용후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료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밝혔다.

이 계획은 세 개 원자력 발전소와 오클로의 SMR 건설 중심 사업 모델과 연계된다. 9월에는 아이다호 폴스에서 재처리 연료를 사용하는 SMR, ‘오로라 고속 원자로’의 착공식이 열렸다. 오클로 대변인은 “현재 연료 재처리 작업을 진행 중이며 2027년 말이나 2028년 초쯤 공장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별도의 오크리지 시설은 2030년대 초까지 연료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오클로는 원자력 발전 부활과 관련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으로는 핵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수십 개의 SMR을 건설해 AI 데이터 센터와 제조업 공장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가동되는 시설이 없고, 오로라 원자로에 대한 NRC의 최종 승인도 기다리고 있다.

원자력 반대론자들은 펜실베이니아 쓰리마일아일랜드(1979), 우크라이나 체르노빌(1986), 일본 후쿠시마(2011) 사고를 근거로 신규 원자로 건설 중단을 주장한다. 반면 기후변화 관점에서는 원자력이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원으로 강조된다. 태양광·풍력과 달리 24시간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며 발생하는 폐기물도 상대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의견이다.

미국에서는 아직 SMR이 완공되지 않았지만 뉴스케일파워, 홀텍 인터내셔널, 아마존 지원의 X-에너지, 빌 게이츠가 공동 창립한 테라파워 등 여러 기업이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현재 실제로 건설 중인 SMR은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카이로스 파워의 오크리지 헤르메스 원자로뿐이다.

차세대 핵기술, 시간과 신중한 검토 필요

미국에서 원자력 발전은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의 전력 수요 증가, 안정적 전력 공급, 탄소배출 없는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행정부와 빅테크 기업들은 신규 원자로와 SMR 개발, 기존 원전 재가동, 차세대 연료 재처리 기술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며 이를 미래 에너지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원전 건설의 높은 비용, 긴 공사 기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문제, NRC 독립성 우려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스타트업과 신기술이 이를 보완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상용화와 안정적 운영까지는 아직 시간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서민원 CA 변호사·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