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에만 1.3% 성장했다는데 살림살이는 제자리
2021년 4분기 이후 최고 분기 성장률 기록
고환율 장기화에 소비자물가 2%대로 뛰어
GDP 늘어났다지만 고환율·고물가에 ‘빈손’
올해 3분기 한국 경제가 1.3% 성장했다. 2021년 4분기(1.6%) 이후 15분기 만에 최고치다. 정부도 우리 경제가 지난해 내란사태와 역성장의 그늘을 벗고 내수와 수출 모두 회복세를 탔다고 진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소비 등 내수 개선, 반도체 호조 등으로 경기가 회복 흐름을 보이며 상반기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경제지표도 ‘경기회복’을 향하고 있다. 지난 연말이나 상반기와 비교하면 내수와 수출, 생산 모두 부진을 털고 어깨를 펴는 모양새다.
◆하반기 2%대로 뛴 물가 = 실제 우리 경제는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로 시작했다가 2·3분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엔 승용차등 재화와 음식점·의료 등 서비스 소비가 모두 증가하면서 민간 소비도 1.3% 늘었다. 반도체·자동차의 활약으로 수출도 2.1% 증가했고, 정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집행으로 건설투자도 0.6% 늘었다.
이런 수치를 근거로 정부는 올해 1%대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수치상으로도 4분기 성장률이 -0.4%만 넘으면 연간 성장률 1%대가 가능한데 한국은행의 4분기 전망치가 0.2%다. 만족스러운 수치는 아니지만 ‘0%대 성장’을 벗어나 경기반등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지표와 실제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일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숫자는 좋아졌다는데 생활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이 더 많다. 왜 그럴까.
첫 요인은 물가다. 물가가 뛰면 소득 몇 푼 더 늘어나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키워 경제심리는 더 나빠진다.
4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7.20(2020=100)으로 전년 동월보다 2.4% 상승했다. 3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이다. 성장률이나 소득이 2% 늘어봐야 실질소득은 0.4%만큼 마이너스가 된다는 얘기다.
국제유가가 안정세임에도 고환율 여파에 석유류가 5.9% 올랐다. 알다시피 기름은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먹거리 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5.6% 급등했다. 쌀(18.6%), 귤(26.5%), 사과(21.0%), 고등어(13.2%) 등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 밥상·외식 물가와 직결되는 수입 쇠고기 값도 6.8% 올랐다.
◆고환율의 그늘 = 물가와 복합적으로 연관된 지표가 환율이다. 고환율이 굳어지면서 미국 달러화로 환산한 우리나라 GDP는 올해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IMF는 최근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달러화 기준 명목 GDP를 1조8586억달러로 추산했다. 지난해 1조8754억달러보다 168억달러(0.9%) 줄어든 규모다. 2023년의 1조8448억달러와 비교해도, 2년간 138억달러(0.7%) 늘어나면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원화 기준으로 명목 GDP가 지난해 2557조원에서 올해 2611조원으로 2.1% 늘어날 것이라는 게 IMF의 예상이다.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0.9%)에 물가 요인을 반영한 수치다. 원·달러 환율 상승폭이 GDP 증가분을 압도하면서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주간종가 기준으로 올해 1~11월 평균 환율은 달러당 1418원으로 지난해 연평균(1364원)보다 54원(4%) 높아졌다. 최근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은 만큼 12월 수치까지 반영하면 연평균 환율은 더 오를 수 있다.
◆일부 경기지표 회복세와 거리 = 이런 사정으로 3분기 실질국민총소득(GNI)는 전 분기 대비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실제 구매력을 말다. 물가와 환율이 오르면 GDP가 올라도 GNI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GDP가 생산 규모를 보여준다면, GNI는 개개인의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표가 둔화했다는 건, 성장 이익이 생산 숫자에만 잡혔고 국민 생활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환율 상승과 무역조건 악화가 명목소득의 구매력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총저축률은 전 분기 대비 1.2%p 떨어진 34.4%를 기록했다. 소비가 늘었지만 저축은 줄었다. 국민들의 향후 경기 불안감이 저축률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부분 경기지표가 ‘경기회복’을 향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표도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정부의 평가에도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일부 지표들은 여전히 부진한 모양새다.
대표적인 지표가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동행종합지수에서 추세 요인을 제거한 지표로,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준다. 이 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100 이하이면 경기 수축을 각각 의미한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작년 6월부터 17개월 연속 기준선인 100을 하회하고 있다. 올해 초 내란사태가 일단락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기준선 이하’란 사실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