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요급증, 메모리 칩 공급 위기
SK하이닉스 “2027년까지 메모리 공급 부족 ” … 사실상 비상 사태, 부르는게 값
일본 전자상가들은 고객들에게 하드디스크 구매 한도를 두기 시작했고,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출고가 인상을 예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바이트댄스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연이어 문의를 넣으며 물량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공급난의 핵심 원인은 인공지능용 고대역폭메모리 수요 폭증이다. 2022년 말 챗GPT 출시 이후 AI 데이터센터 확장이 본격화되자 메모리 기업들은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에 집중했다. 반면 PC와 스마트폰에 쓰이는 기존 메모리 생산은 크게 줄었고,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중저가 D램 공세까지 겹치며 전통 제품군 공급이 급격히 위축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 업체의 평균 재고는 지난해 17~13주 수준이었으나 올해 10월 들어서는 4주에서 2주로 급감했다. 업계에선 “사실상 바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메모리는 가격이 2월 이후 두 배 넘게 올라 업계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우려는 거시경제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한다. 기술 자문사 그레이하운드리서치는 “메모리 부족은 이제 특정 부품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위험 요인”이라며 “AI 인프라 확대가 공급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AI 투자 확대에 따라 데이터센터 교체 수요도 늘어나고 있지만, 메모리 업체들은 수요 급감을 우려해 기존 제품 라인을 과감히 늘리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증설 계획을 내놨지만 실제 생산까지는 몇 년이 걸린다. 일부 제품은 2026년 생산분까지 이미 완판된 상태다.
한편 오픈AI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는 2029년까지 월간 최대 90만장 웨이퍼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측은 “이는 현재 전 세계 HBM 생산량의 두 배”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제한 없는 주문을 내며 “가격보다 공급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투자자 설명회에서 메모리 부족 현상이 2027년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일본 아키하바라에선 메모리와 저장장치 판매를 1인당 8개로 제한하는 매장이 등장했다. 32기가바이트 DDR5는 10월 중순 1만7000엔에서 최근 4만7000엔을 넘겼다. 중고 거래까지 활기를 띠며 재고를 비축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중국 샤오미와 리얼미는 메모리 가격 급등을 견디기 어렵다며 스마트폰 가격을 최소 20%에서 30%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전통 제품 공급 부족은 일반 소비자용 전자기기 가격에도 압박을 주고 있다. 글로벌 연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4분기 메모리 가격이 30% 오르고 2026년 초 20%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공급난이 장기화하면 AI 인프라 구축 일정은 물론, 스마트폰과 PC 교체주기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업계 한 임원은 “공장을 새로 지어도 가동까지 최소 2년이 걸린다”며 “지금 상황은 업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수요가 폭증한 결과”라고 말했다.
결국 AI 확산이 메모리 공급망의 구조적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수요는 폭발하고 있지만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면서 글로벌 전자산업 전반에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