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있을 건 없고, 없을 건 과다한 쿠팡

2025-12-08 13:00:10 게재

쿠팡사태의 파장이 확산하며 국내 전자상거래 1위 업체의 민낯이 속속 드러났다. 회사를 그만둔 직원이 고객정보를 빼내간 사건을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고 우기더니만 정보보호와 내부통제 등 위기관리에 허점이 많음을 ‘노출’했다. 기업이 갖춰야 할 책임경영과 투명경영도 없었다. 대신 최소한이어야 할 대관 로비는 과다하고, 없어야 할 다크패턴(눈속임 상술), 거짓 공시가 횡행했다.

고객 3370만명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까지 유출된 국가 재난급 사고인데도 쿠팡의 대응은 무책임했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올렸던 사과문을 이틀 만에 내리고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를 앉혔다.

정보보호와 위기관리는 엉망이었다. 대규모 고객정보가 유출됐는데도 5개월간 몰랐다. 인증 담당 직원이 퇴사했는데도 폐기되지 않은 서명키로 시스템에 접속해 정보를 빼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5년 사이 4차례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모두 외부 해킹이 아닌 시스템 오류 등 내부 문제였다.

나스닥에 상장한 쿠팡은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주기적으로 모의 보안훈련을 실시해 사이버사고 대응·복구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투자액에서 보안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7.1%에서 올해 4.6%로 줄었다.

‘보안 강화’ 약속하고 실제론 투자 축소

쿠팡사태가 외부로 알려진 지 열흘이 넘도록 창업자이자 쿠팡Inc 이사회 김범석 의장은 침묵하고 있다. 국회가 긴급 현안질의에 김 의장의 출석을 요구했으나 박대준 쿠팡 대표가 나왔다. 하지만 박 대표의 답변은 무책임하고 공허했다. 해외에서 사업하는 김 의장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의원들이 추궁하자 피해보상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방안과 실행 일정은 없었다.

쿠팡의 늑장 대응과 책임 회피는 이번만이 아니다. 2021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발생 당일 김범석 창업자는 한국법인 이사회 의장 및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당시 강한승 쿠팡 대표 명의 사과도 화재 발생 32시간 뒤에 나왔다. 회사 운영과 조직 관리도 부실했다. 물류센터에서 올해만 야간 근로자 4명이 사망했다. 취업규칙을 바꿔 일용직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가 외압 의혹으로 상설 특검을 앞두고서 지급했다.

근로자 사고가 잇따르고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한데도 쿠팡은 실질적인 개선보다 로비 강화에 힘썼다.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44명을 영입했다. 올해 채용한 18명 중 절반은 의원 보좌관 출신이었다. 고용노동부에서도 8명을 모셔왔다.

해외 로그인 시도와 결제승인 알림이 떴다는 소식에 불안한 고객들이 계정을 해지하려니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 가입할 때는 이메일 비밀번호 휴대폰번호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탈퇴 과정은 회원정보 수정, 이용내역 확인, 설문조사 등 6단계로 복잡해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쿠팡의 무책임하고 오만한 태도는 온라인 거래 비중이 커지는 시장 변화와 동떨어진 유통산업 규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당국의 느슨한 제재와도 관련이 있다.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며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자 쿠팡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됐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한국에 경쟁업체가 없고 소비자의 데이터 민감도가 낮아 쿠팡의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낼 정도다.

미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막대한 배상과 제재가 뒤따른다. 2021년 사이버 공격으로 76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통신사 티모바일은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3억5000만달러(약 5100억원)를 배상했다. 주(州)정부별 제재 등으로 회사가 부담한 총비용이 50억달러(7조3500억원)에 이르렀다.

쿠팡은 매출의 약 90%를 한국에서 내면서도 본사는 미국에 두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 양다리를 걸친 기형적 지배구조로 불리한 책임은 회피하고 법과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이득을 취해왔다.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대한 관리 감독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

김 의장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듣고 싶다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한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결함 교통사고로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고개를 숙였다. 도요타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보상하고, 세계적으로 1000만대 넘게 리콜했다.

국회가 17일 쿠팡 청문회를 예고했다. 미국 국적인 김범석 의장이 청문회에 나올까. 쿠팡은 올해로 창립 15주년이다. 로켓배송과 와우멤버십 등의 혁신으로 한국 이커머스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김 의장이 직접 진정성있는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 보상 방안도 내놓아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