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김영삼 개혁보수의 길’을 복원하라
국민의힘의 ‘극우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윤석열이 벌인 12.3계엄사태가 있은 지 1년이 지난 상황에서 정치의 정상화와 한국 민주주의의 재도약을 위해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년 사이 한층 더 극우화되었다.
장동혁 대표는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며 부정선거론의 대표적 주창자와 국민의힘을 동일시했다. 또 대국민 사과를 거부하면서 윤석열 비상계엄의 부당성과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재명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자고 장외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 중에 국민의힘 지지층 중 68.8%가 계엄이 적절했다고 보며 74.9%가 사과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내일신문 2025년 12월 2일).
윤석열은 감옥에서 공개서한을 통해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종북좌파, 헌정체제 전복 세력 척결을 위해 비상계엄을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재명정권을 국민을 짓밟는 독재정권이라며 국민이 똘똥뭉쳐 레드카드를 꺼내달라고 요청했다. 부정선거·불법계엄·내란 옹호세력이 이재명정권 퇴진 투쟁을 벌이자는 메시지다.
‘보수다운 보수’ 재건 위한 변화 선행돼야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을 포함한 민주·진보층의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당의 입지 및 존속과 정치권력의 획득을 위해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하며 헌정체제를 끊임없이 불안에 빠뜨리고 있음을 감안할 때 충분히 검토할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을 변화시키려면 외부의 압박만으로는 안된다. 윤석열 계엄과 탄핵의 강 건너기, 즉 극우화를 저지하고 ‘보수다운 보수’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힘 내부의 변화가 선행되거나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힘 해산만이 아닌,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고 진작시키기 위한 ‘보수정당 재건 필요성’에 대한 주장도 나와야 한다.
보수정당 재건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모델이 필요하다.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는지를 알아야 주장에 힘이 붙기 때문이다. 모델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축적 속에 만들어진 유산에 기대어 현재를 살고 미래로 나간다. 즉 역사적 경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단지 예전에 만들어진 길에 머물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얻은 자원을 활용해 더 멀고 긴 길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보수다운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주목할 역사 속 유산과 자원은 무엇인가? 바로 김영삼 개혁보수의 길이다. 지난 11월 22일은 김영삼 대통령 서거 10주기였다. 국민의힘은 12월 3일이 아니라 11월 22일을 자신들의 기념비적인 날로 만들어야 했다. 이날 김영삼의 길을 다시 걷겠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김영삼은 군부독재에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고,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와 희생자 및 유공자를 존중했다(5.18특별법의 제정, 전두환·노태우 군부쿠테타 세력의 사법적 처벌). 굳건한 반공주의자이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다(김일성과의 정상회담 추진). 또 군의 정치적 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하나회 숙청). 철저한 자본주의자이면서도 군부독재의 적폐에 기생했던 공직자의 부당하고 탐욕스러운 사익추구경향을 인정하지 않고 제어했다(사정개혁의 실시).
이를 통해 극우를 정치권력 밖으로 주변화했다. 그래야 분단과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대 변동 속에서 고난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세웠던 국민의 생명과 안정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겼다.
김영삼 개혁보수의 유산에서 배울 것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권의 공적은 IMF 외환위기를 가져온 탓에, 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참사의 반복 속에, 노동과 경제와 교육 분야에서 약자를 포용치 못하는 정책 속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후예들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개혁보수의 길을 걸었던 김영삼의 ‘큰 정치’를 다시 살리고 복원해야 한다. 당내 극우와 투쟁을 할 때도 혹은 새로이 살림을 차려 진짜 보수정당을 만들 때도 이를 깃발로 내걸어 세력과 지지를 모아야 한다.
고작 윤석열을 버리네 아니네같은 문제를 갖고 지리한 논란을 벌이며 극우의 존재감만 키워줄 필요도 여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