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안전보건 정보 공시 수준 ‘미흡’
협력업체 안전보건 공개 30% 수준에 불과
공급망 관리체계 강화… 정보 공개 수준↑
최근 잇따른 산업재해로 안전보건 관련 정보의 공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자본재 산업 기업들의 경우 아직도 정보 공개 수준이 미흡하며, 특히 협력업체의 안전보건에 대한 현황 공개는 30% 수준에 불과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은 협력업체를 포함한 공급망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운영 실적과 성과를 중심으로 안전보건 정보 공개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산재사고 증가로 이어져 = 9일 한국ESG연구원(KCGS)이 건설업이 포함된 국내 자본재 산업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공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안전보건 경영방침을 비롯하여 목표, 위험관리 프로세스 등 구체적 내용을 포함한 관리체계를 공개한 기업은 42개사(29.8%)로 그쳐 구체적 수준의 공개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공개한 기업은 총 119개사(84.4%)로 자본재 업종 대부분이 안전보건 이슈에 대한 기업의 방향성, 의지를 담은 경영방침을 수립하고 공개했지만, 구체적 수준의 운영 활동 및 성과에 대한 정보는 공개 수준이 높지 않았다.
안전보건 위험관리 프로세스를 공개한 기업은 원청 기준 57개사(40.4%), 협력업체 기준 52개사(36.9%)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원청과 협력업체를 구분해 안전보건 관련 중대한 영향을 식별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나아가 식별한 위험을 예방・개선・완화하기 위한 조치 실적을 공개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다. 특히, 위험 식별 결과에 따른 구체적 조치 실적까지 공개한 기업은 원청 기준 24개사(17.0%), 협력업체 기준 22개사(15.6%)에 불과하여, 위험 식별 단계 대비 조치・개선 단계의 공개 수준이 크게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원청 기준 안전보건 지표를 공개한 기업은 119개사(84.4%)로 대부분 기업이 자사의 산업재해 현황을 측정 및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안전보건 공시 주요 항목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공개율을 보였다. 반면 협력업체 기준 안전보건 지표를 공개한 기업은 42개사(29.8%)로 원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협력업체 산업재해에 대한 관리체계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수빈 한국ESG기준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기업이 안전보건 위험관리 체계를 일정 부분 구축하였으나 협력업체를 비롯한 공급망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리스크 관리가 여전히 미흡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는 실제 사고 증가로도 이어졌다. KCGS가 최근 발표한 ‘2025년 ESG 평가 및 등급 공표’와 ‘2025년 ESG 평가 영역별 주요 이슈 분석’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발생한 중대 안전사고 57건 중 65.8%인 39건이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발생했으며, 협력업체 사고 건수는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전체 사고의 61.4%는 같은 기업에서 한 해 두 건 이상 반복된 사고였고, 최근 2년 연속 사고가 발생한 기업 비중도 36.8%에 달했다.
◆해외 주요국, 사고 맥락과 대응과정까지 공개 = 반면 해외 주요국에서는 재해의 원인, 경과, 조치 내역 등 사고의 맥락과 대응 과정까지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안전보건 리스크 관리 역량을 외부에 투명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산업안정보건청(OSHA)의 산업재해 추적 시스템은 기업이 매년 산업재해 관련 요약 보고서를 OSHA에 제출하고, OSHA가 데이터베이스로 형태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24년부터는 연간 요약 보고서 외에도 고위험군 산업을 대상으로 재해 발생 시 7일 이내에 재해 원인, 경위, 치료 정보 등을 담은 사건 보고서를 별도로 작성 및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ESRS)을 통해 안전보건 관련 정보의 공시를 요구하고 있다. ESRS S1(자사 근로자), S2(가치사슬 근로자) 기준에서 안전보건 관련 항목과 지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S1(자사 근로자), S2(가치사슬 근로자) 모두 공통적으로 전략, 영향・위험・기회 관리, 지표 및 목표 등 3개 공시 프레임워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은 2023년부터 유가증권보고서 내 인적자본 관련 공시를 의무화해, 인적자본의 범위에 안전보건, 직원 교육, 다양성 등이 포함됐다.
기업별 사례를 보면 글로벌 석유회사인 Shell의 경우 매년 연차보고서를 통해 자사와 협력업체 근로자 관련 안전보건 지표를 공개하고 있다.
사망자 수 외에도 업무 관련 중증 상해자 수, 근로손실재해율 등 다양한 지표를 시계열로 공개하고 각 지표의 산출 방식까지 공개하여 안전보건 관리 현황을 비교, 추적이 용이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산업재해 현황의 경우 발생 건수뿐만 아니라 사고의 경위, 원인 등을 함께 공개함으로써 위험관리 체계와 개선 활동의 구체적 운영 현황을 투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산업재 기업인 지멘스가 2024년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공급망 실사 결과 안전보건 관련 위험이 식별된 협력업체의 수와 위험 관련 개선 조치가 합의된 기업의 수를 공개하고 있다.
다국적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는 2023년 별도의 실사 보고서를 통해 실사에서 식별한 안전보건 관련 중대 사건의 수를 공개하는 한편, 조치완료・거래 종료・진행 중 등 단계별 조치 실적과 실제 조치가 완료되기까지 소요된 평균 시간까지도 공개함. 또한 주요 부적합 사항의 구체적 내용도 함께 공개하여 공급망 리스크 관리체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했다.
애플은 매년 공급망 점검 보고서를 공개해 안전보건 관련 지원 프로그램의 누적 참여 인원(580만명), 설비 안전훈련 참여 사업장(800개 이상) 등의 성과를 매년 정량 지표로 공개하고 있어 협력사 지원체계의 투명성을 제고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안전보건 공시제' 본격 시행해야 = 한편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을 목표로 ‘안전보건 공시제도 의무화’를 준비하고 있어 향후 과정이 주목된다. 이르면 2027년 4월부터 500인 이상 사업장의 산재 발생 현황뿐 아니라 안전 투자 계획, 재발 방지 대책, 안전 관리 체제 등을 정기·수시로 공개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법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안전보건 관리체계 확보와 관련 정보 공개에 대한 기업의 책무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선임연구원은 “해외 주요국에서는 안전보건 관련 정보 공시의 의무화가 강화되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체계, 위험관리 프로세스, 산업재해 관련 정량 지표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며 “향후 정부가 추진 중인 안전보건공시제 도입 논의 등을 고려해 국내 기업 또한 공급망 안전보건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관리체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