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높아지는 두만강 유역 개발계획

2025-12-10 13:00:03 게재

러시아, 서방 제재 피할 물류 허브 구축 기대 …중국 주도 개발엔 여전히 소극적

러시아인은 북중러 3국의 국경이 맞닿은 두만강에 대해 ‘안개가 자욱한 강’을 연상한다. 러시아어 발음으로 ‘투만’은 ‘안개’를 뜻한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인 데다가 다자협력의 미래마저 불투명했기에 묘하게 일치된 느낌을 준다.

그런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상황이 변했다. 북한이 러시아의 최우선 협력국으로 급부상하고,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과의 연대가 절실해지면서 초국경협력을 대표하는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에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과 각국 대표단장이 202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 연단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UPI =연합뉴스

러시아, 아태경제권으로의 통합 목표

1991년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의 원년 회원국인 러시아에게 전략적 목표는 극동지역의 장기적 발전과 러시아의 아태지역 경제권으로의 효과적인 통합이었다. 러시아는 특히 철도 가스 전력 등 연해주 남부와 한반도를 연계하는 메가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참여국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지금껏 실행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중국 주도의 GTI로 격상(2005)되어 다자협력의 공간적 범위는 확장되었지만 북한 탈퇴(2009) 등에 따라 조직은 위축되고 추진력은 약해졌다.

출발 단계부터 이 사업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방향이 결합된 프로젝트였다. 하나는 회원국간 ‘초국경협력’이다. 다른 하나는 동북아 물류허브 구축이다. 기실 본질은 중국 선박의 동해 진출이다. 당연히 북러의 경계심과 우려가 컸기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오랫동안 이 사안은 공식 문서에서 언급이 기피되었다.

그런데 2023년 12월 중러 정부간 제28차 회의 공동성명은 ‘인접지역에 대한 공동 환경조사 조직을 포함해 두만강 하류에서 중국 선박의 항해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 교환을 북한과 함께 계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했다. 이후 유사한 문구는 중러 고위급회담 성명서에서 반복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5월 러시아의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중러 정상회담 공동선언문 제9장에서 ‘GTI를 독립적인 국제기구로 전환할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GTI가 어떤 성격의 국제기구로 변모할지 현재로서는 불명확하다. 올 11월 초 개최된 두만강 포럼에서 연변대학교 조선학연구중심의 전홍진 객좌교수는 GTI를 조약 기반의 국제기구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고 △사무국의 기능 확대 및 권한 강화 △회원국 대표의 격상(총리 또는 국가수반) △국가-지방간 협력체제 구축 △협력 분야별 작업반 신설 △사업 평가 및 감독기구 설립 등의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반면 러시아는 최소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엄격한 규칙, 회원국의 책임과 의무 등을 강제하는 경직된 조직 설립에는 주저하는 눈치다. 일단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아세안(ASEAN) 등의 모델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제재 등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조직의 유연성과 기능적 유용성을 결합하자는 원칙론에 멈춰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이 주도하는 GTI가 러시아 북한에 심각한 경제적·지정학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사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극동 전문가들은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구를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다면 러시아의 극동항만과 북한의 나진항 등은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고, 중국이 주도하는 두만강 유역 경제특구가 활성화되면 북, 러의 영토주권이 침식될 것이라 우려해왔다.

최근 중러 양국정상이 GTI를 독립적인 국제기구로 전환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이러한 우려가 불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중국 주도의 GTI를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당장 제재에서 생존하기 위해 중러 경협의 긴밀화가 필요하고, 북한과의 확고한 동맹체제가 구축된 마당에 북중러 연대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고 판단하기에 GTI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다. 최근 극동 지역에 초국경협력에 대한 실수요가 증대되는 추세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푸틴, 초국경협력 강화지침 정부에 하달

푸틴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초국경협력을 강화하라는 지침을 정부에 하달했다. 그는 지난 9월 초 개최된 제10차 동방경제포럼을 결산하는 차원에서 실행 지침 31건을 하달했다. 그중 한 문건에는 기건설된 중러간 니즈니레닌스코예(러)-퉁장(중), 블라고베셴스크(러)-헤이허(중) 철도 통과 구간과 함께 2026년 완공될 북러간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 및 접근도로 정비를 지시하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복합운송물류센터의 발전과 운영 효율성을 제고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앞서 7월 16일 M-12 ‘동방’도로의 ‘듀르툴리-아치트’ 구간 개통식에서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북한과의 자동차 통과 도로 확충을 강조했다. 초국경협력과 물류 역량 확대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북중러 3국간 교통물류 협력은 장기 안정적인 추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중러의 교통물류 협력 장기 안정화 추세

문제의 핵심은 러시아가 중국의 동해 진출 허용 요구에 최종적으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있다. 일단 러시아가 중국에 굴복했다는 서방의 평가는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1991년 중소 국경협정에서 소련은 중국의 두만강 자유 항행에 동의하면서도 ‘항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는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해결된다’는 규정(제9조)을 추가했다. 일종의 리스크 헷지 전략이다. 북한(이해당사국)의 동의 없이 중·러 양국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게 법률적 요건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가능성을 암시한다. 첫째, 러시아가 원한다면 북한의 반대를 명분으로 중국의 압박을 피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의 자유항행을 허용해야 할 상황이 도래한다면 러시아는 북러동맹 관계를 활용해 북중러 3국 협력의 중재자로 나설 것이다. 어떤 경우든 북한의 몸값이 올라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물리적으로 자유항행이 가능할지도 아직은 의문이다. 높이 7m에 불과한 북러 두만강 철교를 통과하는 것이 난제다. 중국으로서는 교각의 높이를 올리고 수심 1m 미만의 두만강 하구를 준설하겠다는 열망이 강하지만 당사국인 북러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게다가 2026년 말이면 두만강 철교에서 하구 방향으로 415m 지점에 자동차 교량이 더 추가된다.

올 4월 자동차 교량 착공식을 관찰한 전문가들은 교량의 높이와 구조가 선박 통행을 위한 기술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다. 중국의 최종 목표는 동해 출구 확보 및 북극해 항로 연계 개발을 통한 국제물류체계 구축이지만 당분간은 주변국의 우려를 고려하여 합의 도출이 쉬운 국제관광 의제에 만족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반면에 러시아의 포부는 더 크고 강력해졌다. 북러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과 연해주 남부(북-중 접경지역)에 지정될 국제선도개발구역(MTOR)이 북러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 전망한다. 연해주 남부 핫산의 국제선도개발구역(러)-나선지구(북)-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북)가 하나의 남북 벨트로 연결되는 북러 협력의 허브를 상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인 G. D. 톨로라야, P. S. 레샤코프 교수는 러시아의 학술지 '극동의 제문제' 최근호에서 나선(북), 훈춘(중)과 접경한 러시아의 핫산 지구에 국제선도개발구역이 조성되면 이 지역이 북중러 3국에 대한 서방의 일방적 제재를 피하면서 북러 합작기업 ‘라손콘트란스’를 활용한 물류 허브 구축 사업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사업을 가리켜 ‘동북아 역내 국제분업 및 가치사슬의 새로운 하위체계를 구축하는 미래지향적 프로젝트’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러시아 기업의 나진항 진출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상업적 이익을 넘어 러시아와 동북아 지역협력발전에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GTI 국제기구화 대응 전략 준비해야

두만강 유역 개발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 증대와 전략적 구상은 대격변을 예고한다. 과거 ‘평화’의 시대에 지지부진했던 두만강 유역 개발이 ‘제재’의 시대에 활력을 되찾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증폭된 지정학적 갈등에 두만강 유역에 내재된 소다자 협력의 잠재력이 침식되지 않도록 GTI 회원국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주도면밀하게 국제기구화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