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과 대응책

2025-12-10 13:00:01 게재

국제정치 상황은 실로 변화무쌍하다. 국제질서는 강대국들의 힘(파워)의 크기를 냉정하게 반영한다. 이제까지 어깨를 나란히 해온 동맹국들을 향해 약탈적 관세폭탄을 투하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폭적 행태’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 현실적 힘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가들로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급급해 하는 것이 비정한 국제관계다.

5일 공개된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미국우선주의’를 바탕에 깔고서 이를 위해선 신고립주의를 불사하는 트럼프 특유의 현실적이고 차디찬 ‘거래적 안보관’을 공식 문서화한 느낌을 준다.

미국우선주의 바탕으로 신고립주의 불사한 트럼프식 안보관

전략서 곳곳에 다층적 의미를 함축하거나 서로 충돌되는 표현들이 있어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실을 것인지 전문가마다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지만 세계가 새로운 구조로 접어들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신호탄으로도 읽힌다. ‘민주주의 확산’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등등 이제껏 익숙했던 이념적 언어 대신 경제적 이익 등 거래 용어가 거리낌 없이 전면에 등장했다.

33쪽 분량의 ‘2025 국가안보전략’에는 19세기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선언인 ‘먼로독트린’에다 트럼프 색깔을 듬뿍 입힌 현대판 비개입주의 등이 담겨 있다. 미 본토 앞마당인 서반구(아메리카 대륙)에 힘을 집중해 불법이민·마약카르텔에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중동·유럽 같은 전통적인 분쟁에선 한발 빼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우리로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아무래도 아시아지역에 대한 트럼프의 안보전략이다. 문서는 대중국 전략에서 종전처럼 중국을 ‘가장 중대한 위협’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경제적 경쟁자’로, ‘상호 유익한 경제관계’라고 잠재적 파트너로도 묘사한다. 중국과의 경쟁을 ‘가치충돌’이 아닌 ‘이익경쟁’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중국을 미국의 가장 큰 도전으로 규정했던 그동안의 정책기조와 결이 다른 접근방식이다.

다만 직접적 자극을 피하면서도 밑바탕에는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의식한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경제·군사적 우위 확보와 중국견제 방책이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대만 문제 등 자국의 경제패권 유지와 관련한 현안에 대해서는 ‘군사적 우위를 유지함으로써 대만을 둘러싼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못 박았다.

문서는 ‘미군 혼자서 감당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 ‘동맹국들이 힘을 합쳐 집단방위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동맹국들에는 물론 한국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도 중국에 대한 억지력 강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등 역할 조정과 대중국 견제 동참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로선 미국의 대중국 대결 전략에 말려들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치명적 안보위기에 휩쓸릴 위험성을 극력 경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중국과 척지지 않도록 전반적인 상황을 슬기롭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필요하면 미국과의 관세협상 과정에서 보였던 결기와 뚝심을 다시 발휘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존재감’ 키워 국익확보 실용외교 펴야

전략문서에는 북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북한 핵위협이 본격화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미국의 안보전략서에 북한 또는 한반도비핵화 목표가 빠진 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중국도 지난달 27일 발표한 군축백서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에서 한반도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미중 안보문서에서의 ‘한반도비핵화’ 삭제는 북핵을 ‘묵인’하거나 ‘방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미국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과의 향후 협상을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유력하다.

우리로선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면서 한편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고 주요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등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현명하게 풀어가야 할 고난도 숙제를 떠안게 됐다. 이런 때일수록 부쩍 커진 ‘존재감’을 지렛대로 활용해 난국을 헤쳐 가며 국익을 증대시키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총체적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