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길 잃은 보수, 리더십이 문제다
12.3 내란사태가 발발한 지 1년, 지금 대한민국 보수는 길을 잃었다. 보수 대표정당인 국민의힘이 갈피를 못 잡고 있어서다. 현재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앞장서 윤석열의 내란으로 빈사상태에 놓인 당에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비상계엄 1년 되는 시점이 태세전환의 골든타임이었지만 장동혁 대표는 오히려 한술 더 떴다. 국민께 사과하자는 당 안팎의 숱한 요구에 장 대표는 “비상계엄은 더불어민주당의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는 윤석열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어깃장을 놓았다. “‘윤 어게인(Again)’이 아니라 ‘윤 네버(Never)’가 돼야 한다”는 당내 소장파들의 주장도, ‘윤석열과의 인연을 끊자’는 원조 윤핵관과 영남중진들의 요구도 아예 ‘모르쇠’ 뭉개며 자기 당 간판에 ‘내란옹호’ 네 글자를 더 선명히 새기고 있다.
장동혁 대표가 발신하는 ‘값비싼 신호’의 결과는
한달여 전쯤 장 대표는 내란선동 혐의의 황교안 전 대표를 응원하며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해 빈축을 샀는데 지금 그가 가는 길 또한 ‘황교안의 길’ 그대로다. 당 대표가 된 후 닮은꼴처럼 ‘극우 지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황 전 대표가 ‘광화문파’ 전광훈 목사와 손잡은 반면 장 대표는 ‘여의도파’ 손현보 목사를 싸고도는 정도라고 할까. 특히 장 대표는 손 목사가 주도한 ‘윤 어게인’ 집회에 나가 “계엄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해 불법계엄으로 놀란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하지만 장 대표의 롤모델 격인 황 전 대표의 ‘극우 앞으로’ 행보는 결국 주권자로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그가 지휘한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103석(미래한국당 18석 포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는 데 그쳤다. 총선참패로 그의 정치생명도 사실상 임종을 고했다.
그러면 장 대표가 지휘할 내년 지방선거는 어떻게 될까. 지금대로라면 비슷한 흐름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갤럽의 12월 2주 데일리오피니언(12월 9~11일 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에서 국민의힘이 앞선 곳은 대구·경북뿐이다. 현재 국민의힘 단체장 지역 중 서울과 부산·울산·경남은 그나마 오차범위 안에서 뒤지고 있지만, 대전·세종·충청에서는 거의 배나 차이가 난다. 중도층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칫 17개 광역단체장 중 단 2곳만 챙겼던 2018년 지방선거가 재현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장 대표는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린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박형준 부산시장, 주호영 국회부의장, 그리고 조선 동아 등 보수언론의 비판에 대해 장 대표와 그의 측근들은 ‘한동훈과 짜고 자신을 음해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부정선거 음모론의 전도사가 된 황 전 대표처럼 장 대표도 음모론 쪽으로만 귀가 열리는 모양이다.
장 대표의 이런 어깃장 심리는 상식으로는 잘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행동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말한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의 한 유형이라고 할까.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handicap theory)에 따르면 톰슨가젤이 포식자를 만나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는 대담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생존에 불리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강하다는 것을 암컷에게 과시하려는 행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핸디캡이 많은 개체가 강한 척 신호를 보냈다가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 십상이다. 눈 앞의 포식자가 그냥 내버려 둘 것인지도 문제지만 위장신호로 잠깐 짝짓기에 성공한다고 해도 진화과정에서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 대표도 민심이라는 포식자 앞에서 으스대며 극우세력에게 구애하지만 그런 위장신호의 결말 또한 도태일 뿐이다. 정직한 신호만 살아남아 선택받는다는 것이 진화의 법칙이다.
건강한 보수가 극우노선과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이유
대학교수들은 올 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꼽았다고 한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한다’는 뜻이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오히려 거슬러 가겠다는 장 대표 리더십의 유효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장 대표의 역주행과 무관하게 현재 한국정치에서 보수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여당의 건강한 반대자가 되어야 할 책무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청래 민주당의 폭주는 불법계엄 방조에 대한 통렬한 반성도 내란 수괴 윤석열과의 깔끔한 단절도 못하고 있는 장동혁 체제의 부산물이다. 대한민국 보수가, 국민의힘 내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장동혁식 극우노선과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