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을 알고 싶다면 가봐야 할 곳들
인생 첫 직업은 ‘데니스’ 식당 접시닦이…무엇이 그를 세계적 기업가로 만들었나
서울 삼성동에 깐부치킨이 있다면 새너제이 베리에사에는 데니스(Denny’s)가 있다. 실리콘밸리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가정하자. 주된 탐구 대상은 시가총액 4조달러 기업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이다. 그를 알기 위해 착륙하고 어디부터 가야 할까. 시작점은 베리에사 로드 2484번지의 허름한 식당 ‘데니스’다. 우리로 치면 24시간 영업하는 분식집이나 다름없는 이 레스토랑은 엔비디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국문화 습득의 강의실 ‘데니스’ 식당
대만에서 태어난 젠슨 황은 1973년 10세 나이로 태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온다. 오리건주에서 기숙학교를 다니던 그는 미국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 혹독한 10대 시절을 보낸다. 그의 맹렬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은 청소년기 미국에 ‘동화’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데니스 시절이 이를 보여준다.
그는 15세에 데니스에서 설거지 담당으로 일을 시작했다. 철야 근무를 자처한 그는 노력만으로 웨이터까지 진급한다. 데니스는 젠슨이 미국 문화를 속성으로 습득하는 강의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빠른 적응을 위해 데니스의 메뉴 전체를 섭렵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데니스의 ‘슈퍼버드’다. 슈퍼버드는 구운 샌드위치 빵에 칠면조고기 베이컨 토마토 치즈를 가득 채운 데니스의 대표 음식이다. 데니스의 전체 메뉴든 복잡한 회로 아키텍처든, 어떤 과제든 단기간에 숙달하려는 접근법은 이후 젠슨의 삶 전체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으로 자리 잡는다.
데니스는 또한 젠슨이 창업을 타진하던 시기에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반도체 대기업 AMD와 LSI로직을 다니던 젠슨은 당시 엔지니어 동료 두 명에게 함께 그래픽 가속기 스타트업을 세우자는 제안을 받는다. 물론 그는 곧장 수락하지 않는다. 후미진 데니스에서 밤을 새며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몰두한다. 젠슨은 노트북을 펴고 시장조사 결과와 수치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래픽 가속기 시장에는 이미 경쟁사가 35개나 있었다. 마침내 36번째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숫자가 도출된다.
젠슨이 공동창업자 두 명에게 제시한 매직넘버는 ‘5000만’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려면 엔비디아가 매년 5000만달러 매출을 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허름한 데니스에서 엔비디아는 시작부터 주도면밀했다.
다음으로 가볼 곳은 다운타운 새너제이의 맥에너리 컨벤션 센터다. 시계를 2015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엔비디아의 ‘GPU 기술 컨퍼런스(GTC)’에서 젠슨은 일론 머스크를 초청했다. 일상적 얘기로 시작된 두 창업가의 대화는 실존적 주제로 바뀐다. 젠슨은 1만달러짜리 유니폼인 가죽 재킷을 입고 머스크를 인터뷰했다.
새너제이 컨벤션센터, 젠슨과 일론의 대립
젠슨과 머스크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선구자이자 이민자였으며 대담한 도전가이자 세계적 수준의 엔지니어였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시각이다. 2015년 GTC는 AI 혁명을 촉발한 당사자인 두 사람의 근본적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젠슨은 AI를 윤리나 철학으로 바라보지 않고 엔지니어링과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뿌리를 두고 접근한다. 그는 AI를 의식이 있거나 지각력을 갖춘 실체로 규정하는 것을 일관되게 거부해 왔다. 젠슨은 ‘통제 불가능한 AI’에 대한 우려는 공상과학에 불과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대신 AI를 엔비디아 하드웨어에서 실행되는 고급 소프트웨어로 정의한다. 젠슨에게 AI는 산업혁명의 엔진이자 모든 것의 한계비용을 낮추는 궁극적 수단에 불과하다.
머스크의 입장은 젠슨의 낙관론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때 AI 개발을 “악마를 소환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머스크는 ‘범용 인공지능(AGI)’을 인류 생존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머스크 철학은 한마디로 인공지능으로 인한 ‘파멸 가능성(probability of doom)’을 낮추자는 것이다. 단순히 차세대 AI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초지능이 도래했을 때 이를 인간의 가치와 일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머스크의 두려움은 초지능 기계의 속도와 자기증강 능력에 있다. 그는 AGI가 인간적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수준까지 진화해 재앙을 불러오거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머스크의 우려에도 테슬라는 엔비디아의 커다란 고객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엔비디아 칩을 사용하고 있으며, 머스크는 GPU 서버를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대규모 계약을 맺었다.
AI 논쟁에서 공상과학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엔지니어링과 시장 지배력에 초점을 맞춘 젠슨과 AI의 위험이 너무 커 민간 부문에만 개발을 맡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머스크가 손을 잡은 것은 분명 역설이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배경과 AI에 대한 젠슨의 입장을 알기 위해 우리는 2015년으로 가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 센터를 찾을 필요가 있다. 다행히 유튜브에서 대담 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끈질긴 집중, 강력한 협력 위한 ‘엔데버’
마지막으로 젠슨을 알기 위해 갈 곳은 엔비디아의 캠퍼스 ‘엔데버(Endeavor)’다. 2017년 개장한 엔비디아 본사인 엔데버는 현대적이며 기하학적인 건축물이다. 이는 컴퓨팅 파워에 대한 젠슨의 믿음과 그의 독특한 창업 철학을 물리적 공간에 구현한 것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캠퍼스가 호화롭고 익살스런 편의 시설을 자랑한다. 반면 엔데버는 이름에서부터 ‘끈질긴 집중’이라는 엔비디아의 핵심 목적에 부합하도록 설계된 업무 공간이다.
축구장 6개 크기 건물에서 단연 눈에 띄는 특징은 기하학적 디자인이다. 엔데버는 모서리가 잘린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건물이다. 카펫에서 캐비닛까지 캠퍼스 전체에 일관되게 삼각형 모양이 등장한다. 물론 의도된 것이다.
엔비디아의 첫 성공작인 NV3은 복잡한 곡면을 사용한 이전 모델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삼각형 기반 렌더링’을 수용했다. 젠슨은 거대한 삼각형 건물에 엔비디아의 근본 원칙, 기술적 탄력성, 효율에 대한 끝없는 추구 등 회사가 지속적으로 상기해야 할 요소를 심어놨다.
엔데버는 철저히 계산된 작품이다. 엔비디아의 기술력을 입증하기 위해 AI와 GPU 기반 맞춤형 시각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디자인했으며 슈퍼컴퓨터로 설계된 최초의 건물이다. 엔데버 설계 과정에서 젠슨은 자신을 상징하는 ‘광속(The Speed of Light)’을 추구했다. VR 헤드셋이 디자인 변경사항을 렌더링하는 데 5시간이 걸리자 이를 10초까지 단축하라고 지시한다. 그의 논리는 5시간이 걸렸을 때는 적절한 수준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지만 10초가 걸리면 최고를 계산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품 개발주기를 극단적으로 단축하려는 엔비디아의 정신은 엔데버 건물에도 각인되어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엔데버가 강력한 협력과 소통을 독려하기 위해 설계됐다는 사실이다. 건물 내부는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며 수천명 직원은 단 2개 층에서 작업한다. 건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완전히 개방된 공간은 정보가 신속하게 이동하도록 계획됐으며 민첩한 의사소통을 뒷받침한다. 엔데버 3층에는 창업자을 위한 호화로운 공간이 있지만 젠슨은 건물 중앙의 작은 회의실을 사용한다. 이는 그가 의사소통과 정보의 중심에 머무르기 위해 철저히 의도한 방식이다.
젠슨의 방한 이후 그가 방문한 치킨집이 연일 화제다.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을 키우고도 데니스 시절을 잊지 않는 그와 꼭 어울리는 장소였다. 물론 젠슨과 회동한 인물은 태어날 때부터 CEO의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다. 대한민국의 절대다수는 그런 운명을 타고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젠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LSI로직에서 엔지니어 동료였던 옌스 호르스트만의 말이 필자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지금도 젠슨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제 그가 엔지니어링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에요. 그는 위대한 CEO로 타고난 게 아니고, 그럴 운명도 아니었어요. 그는 단지 추상화를 통해(by abstracting) 스스로를 CEO로 변모시켰어요. 훌륭한 CEO가 갖춰야 할 자질을 입출력 문제 해결하듯 다루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