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적대’의 정치팬덤, 민주주의 위협한다

2025-12-12 13:00:17 게재

국회입법조사처, 4명 대통령 팬덤 분석

“이중정서 구조, 정치 양극화 요인으로”

한국의 정치팬덤이 대상을 향한 애정과 상대를 향한 적대가 결합된 ‘이중정서 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중구조는 팬덤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팬덤의 잠재적 자원 활용과 민주주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비상계엄 해제 1주년 기억행사’에서 당시 상황을 되새기는 미디어 파사드가 본관 외벽에 투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국회입법조사처 ‘한국정치의 양극화와 팬덤정치의 한국적 특수성에 관한 연구’ 정책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등 4명의 팬덤 사례를 분석한 결과 모두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서적 애착을 기반으로 하며, 인그룹에 대한 긍정정서와 아웃그룹에 대한 부정정서가 함께 나타나는 특성을 보였다.

네 팬덤은 이중정서 구조를 공유하면서도 정체성 형성의 핵심 축과 활동 양식에서는 일정한 차이를 보였다. 박근혜 팬덤(박사모)은 ‘부당한 희생’이라는 피해 서사와 종교적 서사가 결합해 감정적 숭배로 이어졌으며 다양한 아웃그룹(촛불, 언론 등)을 강하게 적대했다. 온라인에서는 기사 공유 등 상호작용형 활동을 보였고 오프라인에선 태극기 집회 등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했다.

문재인 팬덤(문팬)은 ‘촛불’과 ‘개혁’이라는 집단정체성을 기반으로, 공유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을 진영, 이념과 무관하게 일괄 적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언론을 강하게 불신하며 온라인 여론장에 적극 개입하는 행동이 나타났으며 짤, 밈 등을 생산하는 ‘생산형’ 양식도 보였다.

윤석열 팬덤(올어게인)은 ‘자유’ ‘반공’ 등 보수적 가치에 강하게 정체성을 두며, 상대적으로 아웃그룹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온라인 상호작용 활동이 중심이며, 오프라인 집회 결집도 이뤄졌다.

이재명 팬덤(재명이네 마을)은 팬 대상 신뢰와 ‘민주당 개혁’이라는 정당 기반 정체성을 공유하며 당내 정치 과정에 실천적인 특성을 보였다. 팬 활동은 활발한 ‘생산형’ 활동이 이뤄지는 동시에 외부 이슈에 대한 방어적 태도와 일부 아웃그룹에 대한 희화화 기반의 조롱 정서가 함께 나타났다.

보고서는 “높은 참여도, 놀이문화와 창의적 재생산 활동, 적극적인 정치적 영역으로의 관여 등은 정치참여의 외연을 확대하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정치효능감을 높이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면서 “정치팬덤은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위해 활용 가능한 잠재적 자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중정서 구조가 정치 양극화의 요인으로 작용하며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이 이를 증폭시키는 조절 요인이라고 분석하며 “분열적인 정치적 환경을 심화시킬 위험도 함께 내포하고 있어 제도적 차원에서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팬덤의 높은 참여·에너지를 제도권 숙의 구조에 담을 수 있도록 △정당법 개정을 통한 시민·당원 대의원 제도 도입 △정당 차원의 온라인 숙의 플랫폼 의무화 등 정당 내 민주주의 제도 개선방안 등을 제시했다.

혐오 확산과 양극화 차단을 위해 △온라인 좌표찍기, 문자폭탄, 조직적 비방, 허위정보 확산 등에 대한 공직선거법·정보통신 관련 법제 보완 △정당 차원의 디지털 윤리규범 도입 △위반 시 공천 불이익·징계 등 자율적 제재 체계 구축 안을 내놓았고, 플랫폼 환경에 대해서는 △알고리즘 투명성과 정치정보 다원적 접근권 보장 △공영·준공영 디지털 공론장 구축을 제안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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