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칼럼
3대 개혁, 속도에 매달리지 말라
불법계엄이 해제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치가 이전보다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가? 다행히 짧은 시간 내에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후 민주주의가 더 높은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 수준을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해 학자들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소극적 접근은 선거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선거를 통해서 최소한 2번 이상 평화롭게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당이 야당이 되고 다시 야당이 여당으로 지위가 바뀌는 정치 경험이 축적되면 더 이상 쿠데타와 같은 방식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따라서 선거민주주의가 12년 이상 지속되면 민주화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치불안의 핵심이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볼 때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보다 중요한 것이 국정운영에서 권력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여부다.
오도넬(O’Donnell)은 수직적 책임성과 수평적 책임성이 작동하는 정도를 통해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한다. 수직적 책임성이란 국민이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국정운영에 대한 자유로운 평가와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수평적 책임성이란 국가 권력기관끼리 상호견제의 기능이 작동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통제되지 않은 자의적 권력 행사다. 최근 민주주의의 붕괴는 불법적 권력행사가 아니라 외형적으론 합법적 방법을 통해 발생한다. 국민이 권위주의나 독재로 이행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권력의 집중과 자의적 행사가 일상화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공고화는 물론이고 쇠퇴를 막기 위해서 제도 간 견제를 의미하는 수평적 책임성을 강조하게 된다.
민주적 가치와 절차 준수하는 개혁이었나
우리는 3권분립을 제도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국정감사,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사법부의 위헌법률심사권이 대표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있으며, 선출된 입법·행정권력이 사법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권력분립에 배치된다. 또한 국회의 다수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결정을 국민의 명령이라는 명분 하에 일방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수직적·수평적 책임성 모두를 왜곡하는 것이다.
내란 이후 여당인 민주당은 검찰 사법 언론개혁이라는 3대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적폐청산이 완성되지 못한 것을 교훈삼아 가열차게 밀어붙인다. 개혁의 내용이 국정의 근간을 바꿀 정도라는 점에서 충분한 국민적 숙의와 동의가 필요함에도 민주당은 조급함에 빠져있다. 중대한 개혁은 추진 동력이 강한 정권 초기에 달성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설픈 개혁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개혁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현행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개혁이 정당화될 수 없다. 개혁내용이 민주적 가치를 고양하고 개혁 과정이 민주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전광석화처럼 개혁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와 타협의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과업이다. 국민의 동의를 얻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진력이 상실될 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야당은 개혁 전반을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사법적 리스크를 없애고 현 정권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이 추진한 논란이 되는 법안들을 보면 이 대통령의 재판과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허위사실 공포죄의 대상을 축소하는 내용의 공직자 선거법 개정, 배임죄의 범위 축소,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의 형사재판을 임기 종료까지 정지한다는 내용의 재판중지법 제정 등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들은 직간접으로 향후 재판에서 이 대통령에게 유리한 개정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민주당의 일련의 행태를 볼 때 개혁 내용과 과정에 대해 우려를 기우로 치부할 수 없다. 개혁의 정당함을 설득하는 것은 대통령과 여당의 몫이다. 대통령 권한과 국회 다수당의 의석을 무기로 윽박지르듯 개혁을 추진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여권의 개혁 비판적 숙고의 시간 가질 필요
최근 들어 민주당 시절 공직을 지낸 법조계 원로들은 사법개혁이 사법통제가 될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사법부의 자율성 상실로 인한 수평적 책임성의 붕괴를 우려하는 것이다. 이 정부가 임명한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조차도 법왜곡죄를 문명국가의 수치라고 평가했다.
국회 회기가 종료된 연말연시에 여권은 개혁 내용이 3권분립을 훼손하거나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비판적 관점에서 숙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옛 속담에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서 쓸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