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의 일본 톺아보기

한국의 고령자 일본의 고령자

2025-12-16 13:00:01 게재

얼마 전 한국의 지인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고교를 명예퇴직하고 아내는 파트타임 약제사인 부부인데 유럽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왔다 한다. 이 밖에도 퇴직 후 친구들끼리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상당히 여유가 있어진 듯하다.

며칠 전 일본의 지인이 인사차 찾아왔다. 아내는 보육원에서 일하고 자기는 대학에서 근무하는데 내년 초에 퇴직하면 베트남으로 이주한다는 얘기였다. 휴양지 다낭에서 좀 쉰 다음 장애자의 취업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한다.

친구를 중시하는 한국 고령자와 사회공헌을 중시하는 일본 고령자의 차이가 보여 흥미로웠다. 다만 이 차이가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해도 이것으로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친구도 사회공헌도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령자를 일본의 고령자에 비교했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밖의 모든 점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사정이 안 좋다.

고령자 빈곤율 일본은 20%, 한국은 40%

한국의 고령자는 가난하다. 고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을 보면 일본이 20%임에 반해 한국은 40%다. 고령자 열명 중의 넷이 빈곤선에 내몰려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고령화가 되면 될수록 빈곤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현재 고령화율은 일본이 30%, 한국이 20%다. 따라서 한국의 고령자 빈곤율이 일본의 두배라는 것은 앞으로 한국의 고령화율이 높아지면 고령자 빈곤이 더 심각해질 수 있음을 뜻한다.

고령자의 가난은 연금제도가 충분치 않은 데서 비롯된다. 2023년을 기준으로 직장 은퇴자의 1인당 공적연금 수급액을 보면 일본이 월 130만원이 넘는데 비해 한국은 월 70만원이 채 안된다. 일본의 경우 공적연금이 고령자 가구 소득의 2/3를 차지하는데 비해 한국은 그 비율이 1/4에 불과하다.

물론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의 연금제도가 늦게 시작된 때문이다. 연금 가입기간이 짧으니 수급액도 그만큼 적은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연금보험료를 만기 납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있다. 다만 뒤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좋은 일자리 확보와 고용 보장이 전제가 된다.

한국의 고령자가 소득은 적지만 부자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고령자의 자산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부동산 특히 주택이라는 것이다. 주택가격이 꾸준히 오른 탓에 자산가치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택을 팔아 생활할 수는 없다. 쓸 수 있는 돈이 별로 없는 것이다. 실제 일본의 고령자는 전체 자산의 40% 이상을 금융자산이 차지하지만 한국의 고령자는 그 비율이 20% 정도에 그친다.

더 심각한 것은 고령자 내의 소득과 자산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일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하면 고령자의 소득 격차가 커서 상위 소득 20%가 하위 소득 20%의 6배 가까이를 차지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 비율이 7배나 된다. 한편 자산격차는 소득격차보다 더 크다. 지금처럼 수도권의 주택만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면 앞으로 ‘있는’ 고령자와 ‘없는’ 고령자의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질 것이다.

일본보다 일 많이 하는 한국 고령자

주지의 사실이지만 일본은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많이 한다. 2023년 기준으로 일본의 고령자 고용률은 25.7%이다. 남성만으로 볼 때는 34.8%이다. 한국의 고령자는 이보다 훨씬 더 일을 많이 한다. 고령자 전체의 고용률은 38.3%이고 남성만으로는 48.1%에 달한다. 65세 이상 남성의 절반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은 하는 이유도 일본과 다르다. 물론 일본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일하는 고령자는 적지 않다. 하지만 연금이 상대적으로 충실한 편이라 건강유지나 일의 보람 혹은 사회공헌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 고령자 중에도 이런 목적으로 일 하는 사람은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돈 때문에 일한다.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임금 근로자로 일하는 고령자의 60%는 비정규직이고 취업자의 절반은 1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한다. 그러니 임금이나 소득이 높을 리가 없다.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경우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형 사업’(보육시설 봉사 등)은 활동비 명목의 보수가 월 29만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한 탓

고령자의 가난과 일자리 문제를 야기한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헌법에 명시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까지는 꺼내 들지 않더라도 국민의 노후를 보장할 필요에서 연금제도를 마련한 이상 연금을 수급할 때까지는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늘린 때문에 2033년부터는 65세가 되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법정 정년연령은 60세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백의 방치는 정부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일본도 이전에는 이런 공백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20여년 전인 2004년에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해 그 공백을 막았다. 고용보장의 방법은 정년의 폐지, 정년의 연장, 계속고용(퇴직 후 재고용) 중에서 기업이 선택하도록 했다. 이후 65세까지의 고용이 일반화되었고 2021년에는 연금수급 연령(65세)은 그대로 둔 채 70세까지의 취업 기회 확보에 기업이 노력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고령자의 평균 여명이 늘고 노동 의욕이 높아짐에 따라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시급히 고용을 연장해야

이달 들어 민주당은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소위를 열고 정년 연장 방안을 논의했다 한다. 제시된 세 가지 안 중 두 번째를 예로 들면 2029년 61세, 2032년 62세, 2035년 63세, 2037년 64세, 2039년 65세로 법정 정년을 올리는 안이다. 다만 연금수급 연령이 2028부터는 64세, 2033년부터는 65세가 되기 때문에 정년과 연금수급 사이에 2~3년의 공백이 발생한다. 이 공백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공백을 메우는 것 자체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정부나 기업이 베푸는 ‘은혜’ 처럼 처리하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국민의 사회적 ‘권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민주당의 안은 ‘법이 정하는 정년’ 즉 ‘권리로서의 고용보장’ 연령이 낮아 오히려 2~3년의 공백을 초래하고 이에 대해서는 2차적으로 땜질하는 모양새를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모양새가 아니라 우선 ‘법정고용보장’을 65세로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권리’로 보장한 위에 그 방법으로써 정년연장과 계속고용 등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정년 자체가 한국의 고령자 고용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실제 고연령 노동자 가운데 원래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하다가 퇴직한 사람은 10%도 채 안 된다. 그 만큼 중도퇴직이 많은 게 한국인 것이다. 따라서 정년 연장도 중요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가능한 한 희망연령까지 보장하는 것이 실천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

고령자의 고용을 보장하면 청년고용이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숙고해야 한다. 하지만 고령자가 빈곤에 허덕이면 경제적으로도 내수가 살아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활력이 떨어진다. 결국 청년에게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일본이 65세 고용을 보장했을 당시 일본의 고령화율은 19.5%였다. 60세 고용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은 20.3%이다. 고령자 고용문제 해결을 더 이상 미루면 사회적 재앙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호세이대학 대학원 교수 공공정책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