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감원장에 이어 대통령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강조
스튜어드십코드 강도 높은 개정 시사, 금감원도 지원키로
이 원장 17일 자산운용사 CEO 만나 “수탁자책임 강화”
“비 새는 집 들보는 썩어”, “수익추구만 우선, 신뢰 담보 못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민연금의 사회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데 이어 이재명 대통령도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향후 강도 높은 수준의 스튜어드십코드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16일 국민연금공단 업무보고에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며 “공단은 국민의 주주로서 권한을 대신 가진 것이고, 기업의 경영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더라도 이상한 일을 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통제는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 “원시적·후진적 경영 행태를 보이는 곳에 대해서는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고 말해 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의 적극적 행사를 주문했다.
앞서 이달 10일 이찬진 원장은 금융지주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외이사 추천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적극적 역할 이행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원장이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 등의 금융지주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확대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 등을 통한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추천권’ 압박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남의 돈을 맡아 투자하는 기관투자자가 국내 기업에 투자하면서, 수탁자로서 기업 경영을 감시하고 의결권 등을 통해 책임 있게 관여하기 위해 마련된 행동 원칙이다.
이 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관련 분야의 전문성이 높고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을 그동안 강조해왔다.
이 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이 대통령에게도 이 같은 소신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 원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20개 자산운용사 대표(CEO)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도 수탁자책임을 강조했다. 스튜어드십코드 개정과 관련해서도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산운용사는 수탁자로서 투자자 이익을 대변하고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 주체”라며 “의결권 행사는 기업가치 제고와 거버넌스 개선으로 이어져야 하며, 필요시 투자 대상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제시를 통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운용사가 자본시장의 ‘파수꾼’으로서 책무를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도 운용사 내부에서 고객 이익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코드 개정과 이행실태 점검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스튜어드십코드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월 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스튜어드십코드 개선 및 이행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좌담회’에서는 현행 스튜어드십코드의 한계와 개선방안이 제시됐다.
금감원 점검결과 자산운용사 4곳 중 1곳이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를 불성실하게 기재했고 스튜어드십코드에 참여한 자산운용사 중 57개사(21%)는 의결권 행사의 근거가 되는 세부지침도 공지하지 않아 지적을 받았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사후점검 부재’로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적기 때문이라며 ‘기관투자자의 합리적 무관심’을 원인으로 꼽았다. 스튜어드십코드 부실 이행 기관에 대한 패널티 부과 등 이행 강화 방안이 제시됐다.
코스피5000특위 위원으로 스튜어드십코드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좌담회에서 “스튜어드십코드가 본래의 취지대로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단순히 투자자의 이익을 넘어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ESG 경영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튜어드십코드를 더 이상 선언적 규범에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찬진 금감원장은 17일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투자자 최선 이익 원칙이 운용업계에 있어 아주 기본이 되는 대원칙임에도, 금융당국이 나서서 반복적으로 이를 강조해야만 하는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진다”며 “‘비 새는 집 들보는 결국 썩듯이’ 수익 추구만을 우선하는 사업전략은 국민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이 지향하는 투자자보호는 설계-제조-판매 전 과정에서 투자자, 금융투자업자, 감독당국의 시선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이라며 “해외 부동산펀드를 시작으로 상품 설계시 ‘자체 검증을 내실 있게’ 수행하고, 최종 수요자인 투자자 관점에서 ‘투자위험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도록 속도감 있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돈을 굴려 돈만 버는 금융이 아닌 ‘돈을 굴려 가계자산과 경제를 키우는’ 금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자산운용사 대표들은 “책임있는 기관투자자로서 스튜어드십코드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기업·주주가치 제고에 기여하겠다”며 “자본시장 수요기반을 확충하고 장기투자 문화 제고를 위해 장기투자 인센티브 대상에 펀드도 포함시켜달라”고 건의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