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련소 투자 놓고 고려아연 갈등 격화
영풍, 금감원에 ‘정정공시’ 민원
고려아연측 “통상적 수준 거래”
정부는 건설 계획 긍정적 평가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테네시 제련소 건설 계획을 둘러싸고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간 경영권 갈등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영풍은 지난 16일 금감원에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 관련 공시가 미흡하다며 정정 공시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민원을 접수했다.
금감원은 관련 민원 접수를 확인하고, 고려아연의 공시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미국 정부에 과도한 혜택” = 업계에 따르면 영풍측은 민원에서 고려아연이 미국 국방부와 체결한 대출 계약과 관련해 테네시 제련소 운영 법인이 국방부를 상대로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발행하고, 주당 1센트(약 14원)에 최대 14.5%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또 테네시 제련소의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약 22조원)에 도달할 경우 추가로 20%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최대 34.5%의 지분이 미국측에 넘어가게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제련소 사업회사가 합작법인에 각종 인허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매년 최대 1억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내용도 계약에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영풍측은 이러한 주요 내용이 충분히 공시되지 않았으며, 미국 정부에 과도한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MBK측이 공세 수위를 높이는 배경에는 이번 투자 결정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이른바 ‘백기사’ 확보를 위한 것으로, 회사에 불리한 구조로 설계됐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투자 결정 폄훼·왜곡 정보 유포” 반박 =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이 회사의 중장기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법적으로 이뤄진 투자 결정을 폄훼하고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충분한 공시를 진행해 왔다”며 “모든 내용은 거래소 규정을 포함한 법률적 검토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일부 세부 거래 조건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에 따라 필요 시점에 추가 공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세부 사항은 이미 이사회에 모두 보고됐다”며 “오히려 이사의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해 왜곡된 정보를 외부에 제공한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측은 미국 정부의 출자·지원 규모를 감안할 때 신주인수권 조건 역시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가 다른 핵심 광물 기업에 투자할 때도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희소금속 생산업체 MP머티리얼스는 미국 국방부로부터 4억달러를 투자받으면서 최대 15%의 지분을 넘겨주는 옵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추가 지분 20% 취득권’과 관련해서도 고려아연측은 “기업가치가 22조원에 도달했을 때 정상 가격으로 권리를 행사하도록 한 약정”이라며 “투자금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 회사로 유입돼 약 4조4000억원의 자금 확보가 가능하고, 지배력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라고 반박했다.
◆정부 “공급망 안정에 도움” = 이런 논란 속에서도 정부는 테네시주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아연 공장 설립은 지난 8월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며 “고려아연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희토류·희귀광물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무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판단을 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대미 투자펀드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향후 구체적인 투자 단계에서 미 상무부와 논의할 사안”이라며 “현재로서는 그 수준까지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이날 울산시청에서 김두겸 울산시장을 만나 일부에서 제기된 온산제련소 축소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대해 설명했다. 최 회장은 미국 제련소 건설 계획을 설명하며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로, 온산제련소 생산 물량을 이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미국 제련소의 엔지니어링·건설·운영을 위해 비철금속 분야 원천기술을 보유한 온산제련소 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온산제련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 인력도 새로 채용할 방침이며, 내년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기존 계획 대비 2배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또 2028년 게르마늄과 갈륨 생산을 위한 신규 설비 투자를 추진하는 만큼, 이에 따른 추가 인력 채용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은 온산제련소와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며 “울산을 거점으로 한 세계적 기업으로 지속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