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일본의 정보재편, 한국에게 기회인가 위기인가

2025-12-19 13:00:02 게재

일본이 다시 한번 국가운영의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정보국’ 신설은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2차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된 전후 체제를 넘어 일본이 ‘보통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 시스템 전환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아베 신조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이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국가안전보장국(NSS)을 설치해 외교·안보정책을 총리 관저 중심으로 통합하는 전략조정 체계를 구축했다. 다카이치정부가 추진하는 ‘정보 개혁’은 여기에 더해 정보수집과 분석 역량을 제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정책결정 시스템의 완결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이번 정보개편의 핵심은 속도와 집중이다. 현재 일본의 정보기능은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공안조사청 방위성 외무성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다. 정보의 축적 자체는 가능했지만 이를 국가 차원에서 신속히 통합·분석해 하나의 전략 판단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다카이치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정보국을 신설하고 이를 총괄할 ‘국가정보회의’를 설치해 그 의장을 총리가 직접 맡는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기관 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총리가 정보에 대한 최종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구상이다. 관련 법안은 내년 정기국회 제출을 목표로 준비되고 있다. 다카이치가 총리 출마 당시 선거 공약으로 내놓은 ‘인텔리전스 사령탑’으로서 국가정보국 신설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다카이치의 승부수 ‘국가정보국’신설

국가정보국 신설 구상은 미국 정보체계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보유한 독자적 정보활동 역량과 국가정보국장실(ODNI)의 통합 조정 기능을 결합한 모델에 가깝다. 말하자면 일본판 CIA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정보수집과 분석을 정책결정 과정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정보를 국가전략의 직접적인 기초로 작동시키겠다는 의미다. 방위비 증액과 함께 병행되는 이번 정보조직 개편은 일본이 정보 역량의 제도화를 통해 ‘정보 주권국가’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향성은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OIP)’을 설계한 이치카와 게이치 전 관방부장관보를 국가안전보장국(NSS)의 수장으로 기용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 전략의 단순한 협력자를 넘어 역내 질서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향후 NSS와 국가정보국이 결합될 경우 FOIP는 외교적 구호의 단계를 넘어 일본 외교안보 정책을 설계·집행하는 실질적 운영 기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 주도의 역내 안보 질서와 일본의 제도적 정렬을 한층 공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역내 정세는 일본의 이러한 선택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중관계 관리에 무게를 두며 동맹국 일본의 요구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항모전단 운용과 군사적 압박을 통해 일본의 안보환경을 흔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정보재편은 동맹 효율화의 차원을 넘어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자율적 위기관리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 구조적 도전을 제기한다. 일본이 통합 정보 시스템을 기반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정렬을 강화할 경우 한·미·일 협력구도 내에서 정보 접근과 발언권의 비대칭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올해 초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사례는 기술·경제안보 영역에서 신뢰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동시에 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에 명확한 정보 컨트롤타워가 구축되면 북핵 사이버 경제안보 등 복합 이슈에 대해 3국이 보다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통합형 정보기관 운영 경험을 보유한 만큼 변화된 환경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여지도 충분하다.

한국도 정보의 질 확보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결국 관건은 한국의 선택이다. 우리의 강점인 사이버 및 대북정보 역량을 한·미·일 정보협력의 전략 자산으로 연계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경제안보 정보를 통해 한미 간 기술 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단순한 군사정보 교류를 넘어 정보의 질적 등가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는 냉정하다. 판을 짜는 국가는 시스템을 가진 국가다. 일본이 정보 역량의 제도화를 통해 보통국가로 향하는 지금, 한국 역시 주도적 공간을 선점해야 할 시점이다.

홍상진 광운대 특임교수 전 워싱턴 정무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