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끝나지 않은 전쟁에 구속된 국제안보정세
올해의 안보정세를 특징지운 핵심 키워드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안보전략,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권위주의 진영의 결집, 무기화된 상호의존과 경제의 안보화, 그리고 신기술-특히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도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결집 대조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자국의 안보와 서반구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주력했다. 국경안보를 최전선에 내세우고 불법이민을 통제하며 소위 마약테러리스트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파나마 운하에 대한 미국 소유권 주장, 덴마크 치하의 그린랜드 매입 노력, 캐나다의 주권을 침해하는 발언 등으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올해 12월에 출간된 ‘국가안보전략’ 문서에서는 서반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미 바이든정부 시절부터 미국은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이 아니면 군사적 개입을 자제하는 전략을 제시한 바 있고, 미국 경제의 회복, 중산층 보호라는 국내적 목적을 위해 외교정책을 추진한다는 기조를 강조했다.
미국은 대외군사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경제를 강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지구적 군사억제체제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신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안보부담을 요구하며 지구적 차원의 군사적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 내재된 오래된 갈등 요인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며 언제든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발화성을 띠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은 변화된 지구안보정세 속에서 현실화된 잠재적 갈등요인이었다.
미국 주도 질서가 약화되면서 반패권, 다극화, 민주적인 세계질서를 주장해 온 소위 수정주의 세력들은 연대를 이루어 대안적 세계질서를 요구해왔다. 9월 3일 중국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러시아 북한 이란 파키스탄 등을 비롯한 26개국 정상들이 참여해 반서방의 진영화를 과시한 바 있다.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 안보체제가 약화되는 가운데 소다자 안보협력이 유지되거나 가속화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쿼드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고, 오커스 역시 기능을 지속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다자주의는 물론 소다자협력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자유주의 국가들은 소다자적 결속을 통해 대안적 안보체제를 구상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나토에 대한 미국의 공약이 약화되면서 나토 유럽 회원국과 아시아의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간의 협력, 즉 나토+IP4는 지역 간 안보협력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술 기반 군비경쟁 또한 2025년 안보 정세의 중심축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은 군사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지휘통제, 정찰, 드론 전투 체계는 이미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장에서 실전에 투입되었으며, 극초음속 무기, 고에너지 레이저, 자율 무기체계 등도 전력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 군비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오작동, 책임소재, 윤리 기준 등에 대한 국제규범 형성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중관계는 경제안보 중심 진행 가능성
2026년은 무엇보다 끝나지 않은 전쟁들이 국제안보정세를 지속적으로 규정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위한 협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망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의 관점에서 러시아와 협상을 추구하고 있지만 미래 안보를 확신할 수 없는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종전협상과정에서 유럽의 우려가 불식되지 못하면 미국 주도의 협상안에 대한 유럽의 반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전쟁은 홍해 해상 물류 차단과 국제유가 불안정 등 경제적 여파를 수반하며, 중동에서의 군사 충돌이 곧바로 글로벌 경제 위기로 비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정학적 단절은 단일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상호 연동된 안보 리스크로 파생되었으며, 이에 따라 분쟁의 국지성은 점차 소멸하고 복합적 확산 가능성이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트럼프정부의 자국 및 서반구 중심의 안보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중관계는 경제안보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미중 양국 모두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동아시아의 주요 열전지대의 현상변경을 추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정부는 미국경제를 안정시켜야 하는 필요성에 직면해있고 이 과정에서 미중 간 무역 및 핵심광물을 둘러싼 안정적 관계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중동에서는 하마스 전쟁 이후 국지적인 무력 충돌과 심각한 인도적 위기가 지속되는 불안한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란이 주도했던 소위 저항의 축 즉,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반군세력 등은 약화되었지만 중동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고, 이스라엘의 극우세력은 전쟁을 내세워 국내정치 주도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이란의 영향력이 유지되면서 지정학적 불안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권위주의 진영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가운데 지구적 차원에서 개입이 약화되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을 대체하는 전략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를 비롯한 핵심광물의 무기화를 오래전부터 추진해 미국의 관세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를 마련해놓았다. 그 결과 내년도 미중 전략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다.
전략적 긴장의 교착점 될 인도태평양 지역
한국이 놓여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은 전략적 긴장의 교차점으로 존재할 것이다. 올해 대만해협에서는 중국의 해상봉쇄훈련이 빈번히 발생했고, 남중국해에서는 필리핀 선박에 대한 위협이 지속되었다. 동중국해에서는 일본과의 영유권 갈등이 반복되었고, 중일관계는 대만해협을 놓고 수시로 긴장관계를 반복하고 있다. 전면전 확산은 자제되어 왔지만 전략적 오판이나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의 억지 역량 유지에 집중하는 한편, 동맹국들에게는 방위비 분담과 지역 방어의 일차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을 강화할 것이다.
기술 안보 영역에서도 복합적 리스크는 심화되어 갈 것이다. 사이버 작전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을 중심으로 금융 탈취, 정찰, 기반 시설 교란 등 다목적 공격 양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자율 판단을 바탕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억지 전략의 근본적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미중전략경쟁 리스크 대응 위한 전략을
전환기적 환경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명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다. 한미동맹 하에서 미국의 핵확장억제에 기초한 자율적 억제기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감시·정찰·사이버·우주·미사일 방어 분야의 신기술 기초 억제 역량도 고도화해야 한다.
동시에 인도태평양 내 긴장 고조와 미중전략경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호주 동남아 국가들과 다차원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면서 중국과도 외교 및 경제 채널을 유지하는 협력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신기술 경쟁 시대에 한국의 국방력 강화도 더욱 필요할 전망이다. 한국형 3축 체계의 고도화 및 인공지능, 무인 기반 전력 개발이 필수적이며, K-방산은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안보 파트너십 확대의 전략자산으로 기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