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풀자”요청에 꿈쩍않는 기업·가계

2025-12-19 13:00:03 게재

대통령실·외환당국 수차례 요청에도 기업 달러예금 늘고 개인예금 최고치

외환당국 “고환율에 배팅하다 낭패 볼수도 ” 경고에도 시장 판단 변화 없어

정부가 고환율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출기업들이 보유한 외화를 시장에 풀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달러 보유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달러 예금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기업과 가계의 “당분간 환율상승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바꾸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대기업의 경우 미국 관세장벽에 대비해 향후 대미투자를 위한 대기자금을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 등의 영향으로 추가 상승해 장중 1480원을 넘은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외환 당국은 최근 국민연금과 맺은 외환스와프를 실제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달러예금만 87조원 넘었다 = 19일 외환당국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이 보유한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이달 16일 기준 469억8800만달러(약 69조원)다. 11월 말(465억7000만달러)보다 4억1800만달러 늘었다.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10월 말 443억2500만달러로 연중 최저치였지만 11월 이후 오히려 반등하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원화가치 하락)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달러 예금 잔액은 줄어든다. 11월 평균 환율은 1461.25원으로 전월(1428.21원)보다 2.3%(33.04원) 올랐다. 이달 들어 18일까지 평균 환율은 1472.71원으로 10원 넘게 더 올랐다. 환율은 올랐는데 달러 예금은 불어나는 이례적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개인 달러 예금도 16일 기준 122억6500만달러(약 18조원)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말(121억6600만달러) 대비 1억달러가량 늘었다. 기업과 가계에서만 우리 돈으로 87조원 넘는 달러를 예금으로 묶여 두고 있는 셈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고환율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 수요가 더 강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환율이 강세일 것이라고 보는 시장의 판단이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부 거듭된 요청 반향 없어 = 앞서 정부는 여러 차례 대기업들을 만나 보유 달러를 풀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삼성전자 등 수출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수출 대금의 원화 환전을 요청했다. 이달 16일에는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이 나서 삼성전자 등 수출기업에 환 헤지 확대 등을 주문했다. 18일에는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도 수출기업을 만났다.

정부는 시장의 ‘달러 쏠림’을 수차례 경고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은 언론인터뷰에서 “환율을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외환 당국자로서 방향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우리나라 모든 참가자들이 동일한 방향성(환율상승)으로 환을 오픈하고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상과 달리 방향이 바뀌면 경제 주체 전반이 외환 변동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현재 원화약세는 우리 경제 펀드멘탈에 비해서 좀 과도하게 벌어진 것”이라며 “시장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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