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 연말 환율 종가 낮추기 총력전…실효 있을까

2025-12-22 13:00:04 게재

30일 환율 종가, 기업·금융기관 내년 재무제표 작성 기준

연말 환율방어 불가피 … ‘환율전망’ 시장심리 추이가 열쇠

정부와 외환당국이 연말 환율 방어를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국민연금도 조만간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연말 종가 기준 환율이 기업과 금융기관 재무 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외환당국이 특단의 단기 처방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주 정부는 선물환 포지션 제도 합리적 조정과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부담 경감 등 달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한국은행도 사상 처음으로 금융기관의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외환스와프 확대 대비에 나섰다.

◆정부 개입에도 꿈쩍 않는 환율 = 22일 원달러 환율은 엔화 약세 등의 영향으로 장 초반 소폭 상승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오전 9시15분 현재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1.0원 오른 1477.3원이다. 환율은 0.3원 오른 1,476.6원으로 출발한 뒤 횡보 중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엔달러 환율이 157엔 후반까지 치솟는 등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점이 환율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주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결정했지만 추가 금리 인상 속도가 기대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엔화 약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같은 시각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37.85원으로 전 거래일 오후 3시30분 기준가보다 8.74원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0.18엔 내린 157.58엔이다.

최근 환율은 달러 약세 흐름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환율은 지난 17일 장중 1482.1원까지 치솟아 미국 관세 충격이 거셌던 올해 4월 9일(1487.6원) 이후 8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미 지난달 말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87.1까지 하락,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월 말(85.5) 이후 16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약세에도 오르는 환율 = 외환 당국은 올해 거주자 해외증권투자 규모가 사상 최대인 경상수지 흑자를 넘어 과도하게 불어나면서 환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7일 물가 설명회에서 “내부적 요인으로 환율이 불필요하게 올라간 부분이 있다”며 “변동성뿐 아니라 레벨(수준)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투자자들의 ‘고환율 베팅’에 거듭 우려를 표명했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앞서 지난 18일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은 언론인터뷰에서 최근 외환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고환율에 베팅하는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이 차관은 이날 “환율 예측은 굉장히 어렵다”면서도 “우리나라 모든 참가자들이 동일한 방향성(환율상승)으로 쏠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상과 달리 방향이 바뀌면 경제 주체 전반이 환변동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현재 원화약세는 우리 경제 펀드멘탈에 비해서 좀 과도하게 벌어진 것”이라며 “시장을 좀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외환당국의 거듭된 ‘주의보’에도 시장 환율은 ‘잠깐 횡보’를 보일뿐 꾸준히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말 환율 종가, 발등의 불 = 한편 오는 30일 결정되는 환율 연말 종가를 낮추는 일은 외환당국 입장에선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연말 종가는 일선 기업과 금융기관 등의 내년 재무제표 작성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적극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어서다. 연말 종가가 높으면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 금액이 늘면서 금융회사의 부채비율도 높아진다. 금융지주 등에서는 향후 신용평가 등급 하락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거나 연말 고환율로 예상치 못한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최근 선물환 포지션 제도 합리적 조정,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부담 경감, 거주자 원화 용도 외화대출 허용 확대, 국민연금 관련 ‘뉴프레임워크’ 모색 등 가용 대책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도 연말 환율 안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 대규모 환헤지? = 이때문에 외환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 역할론에 시장 관심이 쏠린다. 국민연금이 한은과의 외환스와프를 통해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경우 수급 불균형이 일시 해소되면서 환율이 단기적으로 눈에 띄게 떨어질 수 있어서다.

통상 전략적 환 헤지는 한번 시작되면 상당 기간 대규모로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연말 환율 종가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내년 상반기 시장 안정까지 이어질 수 있다.

외환스와프는 국민연금이 한은에 원화를 맡기는 대신 달러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하지 않기 때문에 환율 수요 압력을 감소시킨다.

또 환 헤지는 신규 해외투자 시 한은에서 가져간 달러를 이용하거나 기존 투자 헤지 시 이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달러 매도 주체로 나서 결과적으로 환율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외환 당국은 지난주부터 국민연금 환 헤지 본격화를 공공연히 예고해 온 바 있다. 윤경수 한은 국제국장은 지난 19일 기자들에게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가 일부 재개된 게 사실”이라며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유연하게 해서, 그에 따른 스와프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이런 외환당국의 환율안정 조치가 외환시장 안정에 실효를 거둘 지는 두고 봐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환당국의 달러수급 안정화 정책이 수출기업과 증권사, 국민연금 등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연말연초를 기점으로 달러 수급에 따른 환율상승 움직임에는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성홍식 백만호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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