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유통기업은 테크기업으로 재편
매장 숫자보다 ‘데이터 밀도’ 중요
고객 데이터 중심 인공지능 활용 … 매장 확장 끝, 개인별 맞춤업태로 변신 중
국내 유통업계 성장 공식이 바뀌고 있다. 출점 경쟁과 거래액 확대에 의존해온 외형성장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유통업계 승부는 고객 한명 한명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고객 ‘데이터 밀도’가 중요한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백화점 이커머스 편의점 등 유통사는 빠르게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고객을 이해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6년 유통사들은 리테일 테크 기업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쇼핑의 ‘에이전트화’ = 과거 유통업계 데이터 활용은 연령·성별 중심 통계 모델에 머물렀다. 하지만 2026년 핵심 키워드는 에이전틱AI(Agentic AI)다. 고객이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기 전 AI가 먼저 상황을 읽고 제안을 던진다. 쇼핑은 선택 행위에서 AI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 선두에 선 곳이 롯데백화점이다. 롯데백화점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AI 쇼핑 컨시어지 ‘더스틴’을 선보였다. 더스틴은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고객 질문 의도를 파악해 정보탐색 상품추천 매장이동 구매유도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하는 에이전틱AI다.
더스틴은 고객 과거 구매이력, 앱 이용패턴, 방문 지점 실시간 재고·프로모션 정보를 결합해 ‘현 시점 고객에게 가장 확률 높은 선택지’를 제안한다. 예컨대 동일한 브랜드 문의라도 방문 목적이 ‘선물’인지 ‘본인 구매’인지에 따라 추천 카테고리와 가격대, 동선 안내가 달라진다.
특히 롯데는 더스틴을 오프라인 매장 운영의 인터페이스로 확장하고 있다. 고객이 더스틴을 통해 관심 상품을 저장하면, 매장 직원 단말기와 연동돼 상품 준비·피팅·대기 관리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백화점 안내 데스크와 판매 어시스턴트를 하나의 AI에이전트로 통합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더스틴은 체류 경험 자체를 데이터로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개인화 전략을 한층 더 고도화했다. 자체 AI 플랫폼 ‘S마인드 4.0’은 단순 추천을 넘어 고객의 구매 전·중·후 전 여정을 실시간으로 설계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했다.
S마인드 4.0은 500만명 이상 고객 온·오프라인 구매이력, 앱체류 데이터, 매장동선, 브랜드·가격 민감도, 시즌별 선호 변화까지 통합 분석한다.
여기에 날씨·지역 행사·유입 인구 흐름 등 외부 변수까지 결합해 고객의 ‘지금 필요한 소비 맥락’을 예측한다.
같은 상품을 찾더라도 고객 방문 목적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응대 시나리오를 자동으로 설계한다. 추천 상품이 아니라 ‘응대 전략’ 자체를 AI가 결정하는 구조다. 매장 직원용 태블릿에는 고객 선호·이슈 이력이 요약 제공된다. 현장에서는 이를 ‘AI 백화점 매니저’로 부른다.
현대백화점 접근은 다소 결이 다르다. 고객 접점에서 발생하는 비정형 데이터(VOC)를 경영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구현한 조직이 ‘인사이트 랩스(Insight Labs)’다.
인사이트 랩스는 연간 7만건 이상 고객의견, 콜센터기록, 리뷰, 직원 리포트를 생성형 AI로 분석해 불만 원인과 개선 우선순위, 예상 파급효과까지 도출한다. 문제 인식부터 해결책 제안까지 수행하는 AI 분석 조직이다.
◆쿠팡은 알고리즘 회사 = 이커머스 진영에서는 쿠팡이 가장 앞서 있다. 쿠팡은 AI 기반 수요 예측과 자동 발주 시스템으로 기존 7단계 유통 구조를 4단계로 단축했다. 재고·물류·배송 전 과정이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연결되며, ‘새벽 배송’은 속도 경쟁을 넘어 예측 정확도와 실패율 관리의 문제가 됐다.
편의점은 AI 리테일 기술의 실증 무대다. GS25는 DX LAB 매장에서 안면 인식 결제, AI 점포 이상 감지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I가 패키지 디자인과 마케팅 영상까지 제작한 자체상품(PB)상품은 특화 매장에서 최대 168%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CU는 AI 영상분석기반 실시간 점포 관리 시스템으로 결품·청결·동선 문제를 자동 감지한다.
업계는 유통사 차세대 수익 모델로 ‘리테일 미디어 네트워크’를 꼽는다. 유통사가 확보한 회원 데이터와 구매 맥락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광고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은 길 안내와 구매 전환, 신세계는 응대 고도화, 현대는 의사결정 혁신으로 각자 AI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2026년은 유통사가 명실상부한 데이터·AI 기업으로 재정의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