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환단고기 논란을 넘어서는 길
이재명 대통령의 첫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가 23일 해양수산부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첫 생중계로 진행된 업무보고 과정은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과 지엽적 논란 등의 지적도 있었지만 긍정적 측면도 많았다.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감을 부각시킨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의례적인 보고와 지시로 일관하던 과거 대통령 업무보고와는 달리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요 기관장의 업무파악 정도와 역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무원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생중계 업무보고를 통해 국정운영과 정책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장단점을 잘 분석해 발전시켜 나간다면 국민들에게 정치와 국정 운영의 효능감을 한층 더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적 관심을 끈 화제와 논란도 적지 않았다.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제기된 ‘환빠’ ‘환단고기’ 논란이 대표적이다. 전문적 학문의 영역에 비전문가인 대통령의 개입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환단고기는 출전 검증이 어렵고, 저술시기 등이 불확실하며 시대에 맞지 않는 용어 사용 등 여러 면에서 위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전문가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 적절했나
그러나 환단고기와 같은 신화적 민족주의 서사가 유튜브 알고리즘 등을 통해 널리 퍼지고 있고, 이것이 민족 정체성과 역사인식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내부의 역사갈등은 물론 주변국 국민들과의 갈등까지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북아역사 재단에서 고대사 분야 연구비 배분을 놓고 법정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민통합과 주변국 외교관계에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한민족이 환국을 건설해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했다거나 세계문명 확산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서사는 문헌이나 역사유물 등의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황당한 얘기가 그럴싸하게 포장돼 퍼지는 것은 동북아역사재단이나 기존 학계가 채워주지 못하는 고대국가 형성기에 대한 기원 서사 갈증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고대사 연구는 지나치게 문자, 문헌사료 중심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엄밀한 근거를 생명으로 하는 역사학 분야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문자기록이 거의 없는 기원전 초기 국가 형성기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도외시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공백이 환단고기와 같은 신화적 민족주의가 번성하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고대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은 동서양 역사학계가 대체로 인식이 일치한다. 우리의 역사학계도 한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교과에서는 우리의 청동기 시대가 고조선 건국보다 300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기본 역사적 사실조차 정리가 안되었다는 의미다.
우리 역사학계는 문자기록이 없으면 얘기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하지만 세계의 학계는 문자기록, 문헌 밖으로 확장하고 있는지 오래다. 고고학 고생물학 고유전학 고기후학 등분야의 학제 간 공동연구를 통해 고대 역사 및 선사시대로 까지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문헌 한계 넘어 역사의 지평 넓힐 방법 찾아야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한국 일본 중국 등 10개국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한국어의 기원이 9000년 전 중국 동북부의 랴오허 강 일대의 기장 농사를 짓던 신석기시대 농민들의 이주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최근 발간한 ‘한국인의 기원’이라는 저서에서 고인골 DNA분석, 기후변화 자료 등을 통해 한민족의 형성과 이동경로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소개했다.
하지만 우리 고대사 학계는 대체로 타 분야 학문 성과를 대부분 외면하고 ‘문헌’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비판만 할 게 아니다. 문헌의 한계를 넘어서 역사의 지평을 넓혀갈 방법을 찾아야 국민들의 역사 갈증을 풀어주고, 황당한 기원서사가 횡행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