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의 기본 관점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 전력산업은 규제 완화와 경쟁 도입이 확산되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전·송전·배전으로 이루어진 수직통합 구조가 해체되고 민간 발전사의 진입, 전력도매시장 개설 등 경쟁 기반의 구조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어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전력 시스템은 대규모 중앙집중식에서 지역 단위의 분산형 전원 체계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1년에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했지만 이후에도 한전 독점의 대규모 화력·원자력 중심의 중앙집중식 체제를 유지하고 판매 부문 민영화를 중단하면서, 세계적 추세인 개방·경쟁·재생에너지 확대와는 거리가 있다.
한전 중심의 독점과 중앙집중식 공급 구조는 과거에는 효율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개방과 경쟁, 에너지 전환과 기술 변화, 그리고 소비자 역할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를 감당하기 어려워져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시장개방과 경쟁 도입이다.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한전의 계통 망 독점에서 개방으로, 송전·배전·판매 독점에서 판매 경쟁체제로, 통제 요금에서 실시간 시장가격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전력신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힘써야
둘째, 재생에너지와 분산 전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장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재생 에너지와 분산형 전원 중심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소규모 발전시설들은 지역 단위로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전력망의 부담을 줄이고,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 주민 갈등, 환경파괴도 최소화하며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
셋째, 한전에서 망을 분리하여 망 운영 중심의‘전력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여‘전력 비즈니스 플랫폼’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하고 망의 중립성과 합리적인 이용료를 부과해야 한다. 또한 송배전망은 자연독점이므로 공공 망 체계를 유지하되, 송전망 구축 비용을 국민펀드를 활용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계통소득(연금)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 해야 한다.
넷째, 새로운 전력비즈니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전력신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가속도를 붙여야 한다. 계통 망을 플랫폼화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데이터 축적·활용, 정보 보호 등 디지털 역량이 필요하다.
다섯째,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이전에는 전기요금이나 공급방식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지만, 개방과 경쟁시장이 열리고 기술이 뒷받침되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된다.
마지막으로 전기위원회와 전력거래소, 한전, 설립검토 중인 전력감독원 등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전력 정책과 실행을 담당하는 기관이 예산과 인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외부의 간섭이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감독·규제·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은 독점과 중앙집중 구조의 한계를 넘어 안정과 효율·지속가능성·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새로운 구조로 혁신하는 결단 필요
아울러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낡은 틀과 인식’을 과감히 깨고, 규제·공급·독점’에서‘에너지 전환·지역·시장·개방·경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플랫폼 기반의 경쟁적 전력시장’이라는 새로운 구조로 혁신하는 결단이 바로 지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