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쿼드, 인도와 미국의 다른 셈법
트럼프, 안보 기여와 경제적 대가 묶어 … 모디, 선거와 반미정서에 발묶여
12월 초 공개된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은 인도와의 ‘상업적(및 기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인도가 인도-태평양 안보에 더 크게 기여하도록 만드는 핵심 수단이며, 그 수단 안에 호주·일본과 함께하는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포함한다고 적시했다. 인도를 둘러싼 시장·관세·투자 압력과 안보협력을 하나의 문장 안에 엮어 넣은 셈이다.
2025년 인도 개최 예정이던 쿼드 정상회의가 끝내 열리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이 NSS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과 인도가 스텝이 꼬인 채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쿼드라는 렌즈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쿼드 정상회의 가로막은 세가지 장애물
올해 쿼드 정상회의 무산의 배경에는 미국과의 세가지 갈등이 겹쳐 있었다. 첫째는 관세다. 트럼프행정부는 7월 말 행정명령으로 인도산 수입품에 25% 상호주의 관세를 부과하고, 8월에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추가 25%의 징벌적 관세를 더해 대부분 인도산 제품에 총 50% 관세를 적용했다.
2024년 기준 약 898억달러에 이르는 대미 수출 가운데 3/4가량이 직접 영향을 받았고, 철강·전자·자동차 부품 등 주력 품목 상당수는 수출급감과 투자위축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 쿼드는 농업·디지털·에너지시장을 더 열라는 요구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공간이 되기 쉬웠다. 인도로서는 청구서가 먼저 보이는 회담을 주최할 정치적 유인이 크지 않았다.
둘째는 H-1B 비자 문제다. 인도 중산층과 IT 산업에 H-1B는 단순한 취업비자가 아니라 사회적 이동과 소득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통로였다. 2024 회계연도 기준 전체 H-1B 승인건수의 약 71%를 인도 국적자가 차지했을 정도다. H-1B 비자에 부과되는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고 쿼터까지 줄이자 인도에서는 관세는 기업의 문제지만 H-1B는 자녀세대의 문제라며 반감이 한층 강해졌다.
관세충격 위에 비자 불안이 겹치면 정부가 미국을 향해 가시적인 유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여론의 여지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도가 쿼드회의를 열면 국내에서는 “관세와 비자로 압박을 당하면서도 결국 미국 요구를 들어준 것 아니냐”는 시선이 뒤따르게 될 것이었다.
셋째는 파키스탄 변수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분쟁에서 외부 중재는 인도 정치의 금기다. 그런데 지난 4월 팔할감 테러 이후 인도가 파키스탄의 책임 인정과 조치를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미국이 양국 간의 분쟁을 중재했다고 자임한 데 더해 파키스탄 군 수뇌부를 백악관에 초청하고 양국 협력을 논의한 것은 인도 내 반미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맥락에서 쿼드 정상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는 것 자체가 곧 대미 양보로 해석될 위험이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관세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국면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인도를 방문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양국의 정치적 셈법 속에서 이번 쿼드정상회의는 불발된 것이다.
인도 국내 정치가 만든 좁은 여지
여기에 인도 내부 정치·사회 구조도 쿼드 정상회의 재개를 어렵게 만들었다. 2024년 총선 이후 출범한 3기 모디정부는 처음으로 연정 파트너의 지지를 상시적으로 의식해야 하는 구조가 되었다.
2025년 내내 비하르를 비롯한 주요 주 선거가 이어지는 가운데 청년고용 부진, 농촌 지역의 취약성, 불평등 심화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었다. 인도 경제는 6%대 성장세를 이어가지만 상위 소득층과 대도시 소비는 빠르게 회복되는 반면 농촌과 저소득층의 소득정체가 계속되는 이른바 ‘K자형 회복’이 고착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고용의 절반 가까이를 흡수하면서도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16% 안팎에 그치는 농업 부문의 구조적 저생산성은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를 정치적으로 더욱 다루기 어려운 의제로 만들고 있다.
이같은 여건에서 인도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양보하는 모습이 국내 정치에서 어떻게 소비되느냐이다. 농업·비정규 고용 및 지방재정과 얽힌 사안에서 대외 양보를 선택하면 연정 파트너와 야당은 이를 곧바로 선거 프레임으로 치환해 공격할 수 있다. 미국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더라도 그 대가가 눈에 보이는 성과와 서사로 설명되지 않으면 정치적 부담만 남는다.
모디정부가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쿼드 정상회의 재개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온 배경에는 바로 이처럼 양보로 인한 실질적인 손익계산보다는 ‘양보하는 장면’ 자체가 훨씬 더 크게 부각되는 국내 정치의 구조도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은 갈등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성급한 회담 개최로 추가 부담을 자초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멈춤 이후 재조정과 2026년 쿼드의 방향
그렇다고 쿼드의 불발을 양측 관계의 후퇴로만 볼 필요는 없다. 2025년 내내 인도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신중하게 배치했다.
9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BRICS) 회의 참석은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한다기보다 ‘우리는 어느 한 편에만 서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동시에 발신한 사례에 가깝다. 동시에 중국과는 중단되었던 국경 대화를 복원하고 일부 지역에서 병력을 조정하는 등 갈등을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12월 초 푸틴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함으로써 변함없는 양국 간의 우의를 강조하고 에너지·원자력·방산 협력의 틀을 재확인하였지만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장기 공급 안정성을 강조하는 절충적 수사가 동원되었다.
전쟁 전 2% 수준이던 러시아산 원유 비중도 한때 40%까지 올랐다가 30%대 초반으로 내려왔다. 오히려 미국에 양보로 비칠 수 있는 협상을 타결하더라도 그것이 양보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전략적 포석을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중·러와의 관계를 대미 협상의 레버리지로 사용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도 인도가 미국과의 협상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 점진적 조정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도는 미국과의 안보협력의 문을 닫지 않았다. 11월 중순 양국이 새로 서명한 ‘미·인 주요 국방 파트너십 프레임워크’는 공동 생산과 상호 운용성, 기술 이전을 10년 만에 업그레이드했다. 정상회담은 멈췄지만 국방·기술 협력의 동력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관세·비자·농업 둘러싼 조정 여부가 변수
결국 2026년 쿼드의 향방은 관세·비자·농업을 둘러싼 미·인 간 조정이 어느 정도 진전되느냐에 달려 있다. NSS가 보여주듯 트럼프행정부는 안보 기여와 경제적 대가를 한 묶음으로 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국내 정치의 제약 때문에 무역·시장개방에서 눈에 띄는 양보를 쉽게 드러내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관세압박이 거세질수록 쿼드 정상회의는 더 멀어지고 압박이 완화되어 1단계 무역협정이 일정 수준 타협점을 찾기 시작할수록 쿼드는 다시 움직일 공간을 얻는다. 쿼드가 재가동되는 순간은 양국 관계가 갑자기 훈훈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서로가 감당가능한 선에서 상업적 거래와 안보협력을 맞바꾸는 최소한의 균형점을 찾아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한편 인도는 이 과정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선택지 역시 차분히 준비할 것이다. 예컨대 H-1B 제한으로 미국 취업의 문이 좁아질수록 인도정부와 기업은 IT·디지털 서비스 산업을 국내에서 더 키워 고급 일자리를 자국 안에서 흡수하려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려 할 것이다.
오랫동안 두뇌 유출 리스크를 떠안아 온 인도 IT 업계에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에 편중된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대체 시장·파트너 다변화 전략 역시 한층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