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보좌진 불법의혹 폭로전…“곪아터진 갑을관계” “신뢰 깨져”

2025-12-26 13:00:02 게재

김병기 의원 전 보좌진, 사적 업무·각종 민원 불법의혹 제기

“‘제왕적 의원’ 최악 상황 현실화 … 의원-보좌진 불신 조장”

사퇴 압박 받는 김 의원 “침묵 않겠다 … 공적 관계만 유지했어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인 김병기 의원과 김 의원의 전 보좌진들간의 초유의 불법의혹 폭로전 여파가 의원과 보좌진들간의 ‘관계 재설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번에 제기된 의혹을 보면 국회의원의 경우 ‘제왕적 권한’을 악용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사적인 업무를 보좌진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보좌진은 국회의원과의 세세한 대화 등을 녹음해 필요할 경우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렸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갑질 논란’으로 낙마한 강선우 의원과 비슷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곪아있던 의원실 내부 모습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부 의원실의 ‘최악의 모습’이 일반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의원-보좌진의 관계가 건강하게 재설정되기보다는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관계의 특수성이 무시된 채 고용-피고용인의 ‘공적 관계’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20여년 보좌진으로 일해 온 민주당 모 보좌관은 “김 의원과 전 보좌진들과의 폭로전은 단순한 한 의원실의 사례에서 끝나지 않고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를 동지적 관점이 아닌 불신의 관계로 재설정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앞으로 의원과 보좌진은 서로 의심하면서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남겼다”고 했다.

◆“김병기 원내대표 거취 스스로 결정해야” = 김 의원의 전 보좌진들은 김 의원실에서 일할 당시에 김 의원 자녀의 대학 편입 과정을 진행했고 김 의원의 칼호텔(대한항공) 숙박권 수수, 병원 진료 의뢰 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언론을 통해 제기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일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란 희화화, 여성 구의원 도촬(몰래 촬영)과 성희롱, 가족과 의원들에 대한 심한 욕설 등이 담긴 전 보좌진들의 단체대화방 내용 복사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반격에 나섰다.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확보하고 있는 90여장의 복사본 중 일부라며 추가 폭로 가능성도 내비쳤다. 사실상 전면전에 들어간 셈이다.

김 의원은 당내에서 원내대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관계자는 “갈수록 폭로가 이어질 수밖에 없고 할 일이 많은 당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는데 원내대표는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이라며 “정치생명과 관련된 것이라 스스로 결단할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폭로전은 국회 안의 ‘의원-보좌진’ 관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 김 의원은 “의정활동을 넘어 거의 모든 것을 공유했다”며 “서로 신뢰 속에서 오갔던 말과 부탁, 도움은 이제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다”고 했다. 이어 “저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뒤 사실과 왜곡, 허위를 교묘히 섞어 무차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며 “정치 선배의 조언대로 보좌직원과는 오직 공적, 업무적 관계만 유지했어야 했던 건지”라고 자책했다.

◆제왕적 국회의원 막을 길이 없다 =국회의원실에서 국회의원은 ‘제왕’이다. 9명의 보좌직원의 채용과 면직은 국회의원의 의사에 달렸다. 법안이 개정돼 ‘직권 면직’일 경우엔 30일 전에 예고해야 하는 예외조항조차도 스스로 퇴직하는 것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의 ‘갑질’ 논란은 오랫동안 국회의원실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다. 제왕적 국회의원의 힘은 수석보좌관으로 이어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만들어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회 사무처가 인권센터를 만들었지만 가해자가 국회의원일 경우엔 조사권이 없어 ‘무용지물’이다.

껄끄럽게 의원실에서 나올 경우 국회에서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심지어 피감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사기업으로 옮겨가는 것마저 의원이 막아서는 게 포착되기도 했다.

최근 국회의원실을 그만둔 보좌관 출신의 A씨는 “의원과 보좌진들의 주인-노예관계가 빚어낸 문제는 곪아 있다가 때때로 터지고 있다”며 “채용과정과 면직과정 모두 불투명하고 견제장치가 전혀 없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의원의 사적 업무 지시와 이행, 불만, 폭로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재선의 모 의원은 “의원과 보좌진이 과거와 같이 동지적 관계로 유지되는 것은 어렵다”면서 “친했던 보좌진일수록 좋지 않게 나가게 될 경우엔 언제든 발목을 잡을 수 있어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강선우 의원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김병기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후 ‘폭로전’이 나온 대목을 주목하는 이유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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