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발탁 이혜훈<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정치적 배신자’ ‘통합 상징’ 평가 엇갈려
내란 직후 반탄활동 … “진솔한 사과, 납세자와 국민 설득해야”
재정건전성 강조한 ‘매파’ … 적극재정 기조에 보완재 역할론도
보수정당에서 3선 의원까지 지낸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발탁됐다. 12.3 내란사태 직후 계엄을 옹호했던 발언까지 부각되며 논란이 만만찮다. 이 후보자는 “한 때 잘못한 일, 반성한다”며 즉각 머리를 숙였지만 파장은 크다. ‘잠시 한 때’라지만 내란사태에 동조했던 자에게 700조원이 넘는 나라살림을 맡길 수 있느냐는 비판이 커서다.
다만 이 후보자 발탁의 정치경제적 의미는 상당하다. 제대로만 한다면 국민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테러까지 감수하며 20년 정치 끝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적 적군’에게 재정곳간을 내준 셈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는 ‘좌파’나 ‘우파’보다 ‘배고파’가 더 중요하다. 진보든 보수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수사’만은 아니었음을 입증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인기영합(포퓰리즘) 정책 편향’을 보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후보자는 대표적인 ‘건전재정론자’로 최근까지도 ‘무분별한 재정투입’을 반대해왔다.
◆납세자인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출신으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서울 서초 갑에서만 세 차례 국회의원(17·18·20대)에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잠시 바른미래당에 몸담았지만, 2020년 합당 뒤엔 윤석열 전 대통령 경선 캠프에도 합류했다. 올해 대선에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서 정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문제가 되는 건 12.3 내란사태 직후 보인 행보다. 그는 지난 1~3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연단에 수차례 올라 “탄핵소추 절차 자체가 불법” “(민주당처럼) 나라를 흔드는 세력이 내란 세력”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1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직후엔 TV토론에서 “도주할 수 없는 구금 상태에 있던 현직 대통령에게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15자 결정문으로 바로 구속해 버리는 부분에 대해 국민 상당수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반발도 문제지만, 이 후보자 앞에 놓인 가장 큰 산은 국민여론의 수용 여부다. 내달 2일 출범하는 기획처 장관은 국가 예산을 총괄하고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하는 막중한 자리다. 750조원(2026년)이 넘는 예산은 결국 납세자들의 지갑에서 출발한다. 납세자인 국민들이 계엄 옹호 전력의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을 인정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이유다.
김대규(법무법인 티와이로이어스) 대한변협 인권위원장은 “이 후보자가 앞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납세자인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핵심은 진솔한 사과와 기획처 장관으로서의 자질”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인 이혜훈과 장관후보자는 다르다” = 이런 기류를 의식한 것인지 이 후보자는 “(탄핵 반대 활동은) 잘못된 일”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이 후보자는 “계엄이 발발한 순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내 첫 일성이었다”며 “원외당협위원장으로 당시 (탄핵 반대) 분위기에 휩쓸려 잠깐 따라간 건 잘못된 일이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정치인 이혜훈과 장관 후보자 이혜훈을 나눠 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잠시 내란에 동조해 활동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당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란 정치인이란 입지를 고려해달라”면서 “정당인은 자신의 소신과 관계없이 정당의 전체 흐름이나 당론에 맞춰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통합인사의 실익이 더 크다는 대통령실의 인식도 엿보인다. 대선 기간 ‘중도보수’를 자처했던 이 대통령이 경제분야 핵심요직에 보수 정당 출신 정치인을 파격 기용하면서, 통합 인사의 기조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도 전날 브리핑에서 “통합의 힘도 더욱 커지고, 또 실용의 힘도 더 커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이 보수 정당 전직 국회의원을 장관 후보자에 지명한 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15~17대 의원)에 이어 두 번째다.
◆재정의 독소효과 강조한 매파 = 이재명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와 이 후보자가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경제학자 출신의 이 후보자는 재정 건전성을 보다 강조해온 ‘재정 매파’로 분류된다.
이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종합하면,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부 주도 성장 전략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극대화해 민간의 활력을 높이자는 입장이었다. 결국 확장재정을 통한 성장률 제고, 세수 증대 등 선순환을 강조하는 이재명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지난해 2월 JTBC 유튜브 라이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재정 지출을 늘린다고 경제 활성화로 그대로 가지 않는다는 연구가 많다”며 재정의 독소 효과를 우려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세금을 걷어가서 국가가 지출하게 되면 누수와 비효율 때문에 오히려 경기 활성화에 안 좋다”며 “똑같은 1을 썼을 때 정부가 가져가서 쓰는 것보다 민간이 쓰게 내버려두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가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AI·에너지 등 확장재정을 통한 신산업 투자에는 동의하더라도, 성과가 불분명한 재정사업은 과감하게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국가채무 관리 영역에서도 재정 규율 등 원칙을 강조해 왔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절에는 급증한 국가채무를 거론하며 재정 규율의 붕괴를 강하게 비판한 이력이 있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9월 JTBC ‘오대영 라이브’ 인터뷰에서 “건국 이래 70년 동안 전쟁과 IMF 외환위기, 오일 쇼크를 다 겪어오는 과정에서도 쌓인 국가 채무가 660조원이었다”며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단 5년 만에 416조원을 더 얹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향후 재정정책 설정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가 확장재정을 뒷받침하더라도, 국채발행을 통한 조달보다는 기존 지출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재원 마련 등을 강조하며 재정 관리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할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여준 재원 조달에 대한 엄격한 검증 태도는 향후 기획처의 운영 방향을 가늠케 한다. 그는 2017년 바른정당 대표 시절 당시 문재인정부의 예산안을 두고 “장밋빛 전망에 기댄 재원 조달 계획은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라고 꼬집으며 ‘정확한 계산서’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획처가 향후 예산 편성에서도 실현 가능한 세입 추계를 강조하며 사업의 속도와 규모를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