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행위 형사처벌 억제하고 금전적 책임은 대폭 강화
정부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 발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땐 매출 20%로
반복해서 법 어기면 과징금 100% 가중
일상에서 경미한 법 위반은 형벌 폐지
정부가 기업의 중대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 체계를 형사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과징금 등 금전적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사업주와 일반 국민의 경미한 의무 위반은 형벌을 완화하거나, 벌금을 과태료로 전환해 부담을 줄인다. 정부와 여당은 30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경제형벌 합리화 2차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9월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핵심 골자로 발표한 1차 방안에 이어 과도한 경제형벌 규정을 완화하기 위한 후속 조치다.
◆중대 위법행위 금전책임 강화 = 2차 방안은 기업의 중대 위법행위에 대해 형벌보다는 실효성 있는 금전적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형벌 위주 규제가 기업의 중대 위법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우리나라는 형벌 법률, 법규가 너무 많다”며 “이번에 ‘무슨 팡’ 인가 그런 곳도 막 어기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곳에 경제 제재를 해야 한다. 합당한 경제적 부담을 줘야 어떤 것이 경제적으로 손실이고 이익인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유통업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등에서 위법 즉시 형벌을 부과하던 규정이 사라진다. 대신 시정명령을 우선 조치하고, 정액 과징금 상한을 기존 5억~20억원 수준에서 50억원까지 대폭 상향한다. 과징금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예를 들면 대형마트가 납품업자의 타사 거래를 부당하게 방해한 경우 기존에는 최대 징역 2년의 형벌만 있었다. 이를 앞으로는 시정명령과 최대 50억원의 과징금을 먼저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만 형벌을 적용한다.
하도급 선급금을 수령하고도 하청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경우는 정액 과징금이 2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 사안 역시 우선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형벌 자체를 폐지하고 금전적 제재만으로 위법행위를 억제하는 방식도 도입된다. 위치정보 유출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한 이동통신사 등에 대해서는 징역형을 폐지하는 대신 정액 과징금을 4억원에서 20억원으로 5배 상향 조정한다.
정부는 “최근 개인정보 유출 빛 불공정 거래 등 기업의 중대 위법행위에 대한 형벌 중심 제재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며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과징금 상향 조정 등 금전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 의무위반, 형사처벌 완화 = 사업주의 고의성이 없거나 단순 행정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대폭 완화한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사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자동차 제작사가 온실가스 배출 허용기준 관련 서류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경우 기존 벌금 300만원에서 과태료 300만원으로 전환된다. 금융투자, 증권, 신용보증기금 등의 명칭을 무단 사용한 경우에도 징역 1년 대신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한다. 비료 과대광고나 자동차 부품 인증 절차 위반 등 일부 사안에서는 징역형을 폐지하고 벌금이나 과태료 중심으로 제재 수위를 조절한다.
전과자 양산 우려가 큰 생활밀착형 의무 위반이나 경미한 실수에 대해서도 형벌을 대폭 완화한다. 캠핑카 튜닝 후 검사를 받지 않은 경우에는 벌금 100만원 대신 과태료 100만원과 시정명령을 우선 부과하는 방식으로 완화하고, 아파트 관리비 서류 보관 의무 위반이나 무인도 무단 개발 등도 징역형 대신 과태료로 전환한다.
동물미용업자의 변경 미신고와 같은 사안은 형벌 자체를 폐지한다. 식품제조업 대표자 변경 미신고에 대해서는 기존 징역 5년에서 징역 1년으로 형벌 수위를 낮춘다.
이번 2차 방안으로 정비되는 형벌 규정은 총 331개다. 당정은 이날 발표된 개선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입법하고, 지난 1차 방안의 입법도 조속히 마무리하기로 했다.
◆공정위, 과징금 한도 상향 = 아울러 정부는 특히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과징금 한도를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형벌보다 금전적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경제 범죄를 다스리겠다는 취지다.
우선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의 경우 과징금 한도를 관련 매출액의 6%에서 20%로 올린다. 유럽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과징금 상한이 낮은 편이라는 지적이 많아서다.
민생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담합 행위는 과징금 한도가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늘어난다. 온라인 공간의 거짓·과장 광고를 근절하기 위해 표시광고법상 과징금 한도 역시 매출액의 2%에서 10%로 5배 강화한다.
정액 과징금 규모도 커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징금 부과 기준인 관련 매출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법적으로 정해진 금액만큼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기업의 부당지원 행위의 경우 과징금을 40억원까지 부과할 수 있는데, 이를 100억원으로 늘린다. 과징금이 신설되는 항목은 주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들이다. △지주회사·대기업집단 시책 관련 규정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규정 △지주회사 설립 제한 규정 등을 어겼을 때 형벌 조항이 폐지되고 과징금 부과 근거가 마련된다.
공정위는 상습적 법 위반은 무겁게 제재할 방침이다. 현재는 위법 행위를 반복했을 때 10% 수준에서 과징금을 추가로 부과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한 차례만 반복해도 최대 50%를 부과할 계획이다.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00%까지 가중된다.
성홍식·김선일·박준규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