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불영어 충격파, 우려할 정도 아냐"
역대 최저 1등급 비율에 수험생 혼란 … 최저 충족률 하락 우려 속 등급별 점수 차 따져야
2026 수능이 끝나자마자 ‘불수능’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특히 영어가 이번 정시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올해 영어 영역의 1등급 비율은 3.11%. 상대평가 영역의 1등급인 4%보다 낮은 수치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원성이 자자하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생각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예상치 못한 성적을 받아 당황한 수험생을 위해 영어 1등급 비율이 4.7%에 그쳤던 2024학년의 입시 결과를 참고해 영어 영역이 2026학년 정시에 미칠 영향을 짚어봤다. 예비 고2·3 독자는 이를 바탕으로 수능 영어의 중요성을 가늠하고 학습 계획을 세워보길 바란다.
“3점 문항 한두 개만 어렵게 출제돼도 예상보다 등급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2026학년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은 3.11%로 역대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절대평가 과목임에도 상대평가 과목의 1등급 기준인 4%보다 낮은 비율을 기록하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난도 조절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10일 오승걸 평가원장은 직접 사과를 표명하고 사임했다.
잘 들여다보면 1·2등급 비율이 줄어든 데 비해 3등급까지의 누적 비율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4등급까지의 누적 비율은 68.29%로 65.56%였던 작년보다 오히려 높다. 이번 수능 영어에서 흔들린 수험생은 주로 1·2등급대의 상위권 학생이라는 의미다.
윤희태 영동일고 교사는 “수능 영어 영역은 총 45문항으로 2점 문항 35개와 3점 문항 10개로 구성된다”며 “2점 문항 전체와 듣기 유형의 3점 문항 3문제를 전부 맞히면 총 79점으로 3등급까지 확보 가능하다. 여기서 나머지 3점 문항을 몇 개 맞히느냐에 따라 1~2등급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EBS가 올해 변별력이 높았던 문항으로 선정한 24번 32번 34번 37번 39번은 모두 배점이 3점이다.
◆최저 기준 충족률 일부 대학만 영향 = 전문가들은 영어가 고난도로 출제되면서 최저 기준 충족률이 하락할 거라는 예상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을 설정한 대학과 학과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의약학계열이 대표적이다. 가톨릭대 지역균형전형 의예과와 고려대 학교추천전형 의과대학 등은 최저 기준이 4개 영역 등급 합 5 이내인데 이는 최소 세 개 영역 이상 1등급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진수환 강릉명륜고 교사는 “주변 재학생을 봤을 때 3개 영역 합을 보는 최저 기준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방 의대의 지역인재전형에서는 오히려 최저 충족률이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면 의예과 일반전형의 최저 기준이 3합 4 이내인 일부 대학에서는 최저 기준 충족률이 예년보다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태혁 세화여고 교사는 “3개 영역 등급 합이 7이 되려면 1·3·3등급 또는 2·2·3등급을 받아야 한다”며 “영어에서 1·2등급을 받아야 다른 영역의 부담을 더는데 올해 성적이 떨어졌다면 최저 기준 충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2합 7 이내의 최저 기준은 3등급과 4등급의 조합만으로도 충족할 수 있다. 올해 4등급 안에 들어온 학생의 비율은 큰 변화가 없는 만큼 해당 대학의 최저 충족률은 예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영어 영역 1등급 비율이 4.71%에 그쳤던 2024학년 최저 기준이 3합 7 이내인 고려대 학교추천전형은 전체 최저 충족률이 전년 62.4%에서 57.0%로 하락했다. 반면 3개 영역 각 3등급 이내를 충족하면 됐던 서강대는 최저 기준 충족률이 78.3%(인문) 71.11%(자연)를 기록했다.
허철 진학사 수석연구원은 “최저 기준이 높을수록 이월 인원이 나오는 비율도 높아지겠지만 2합 7 이내와 비슷한 수준의 최저 기준을 둔 대학은 이월 인원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어 등급별 점수 차 대학마다 달라 = 영어에서 예상보다 낮은 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많은 지금 영어의 영향력이 덜한 대학에 지원이 몰릴 거라는 예상이 많다. 주요 대학의 정시 모집 요강을 보면 영역별 반영 비율에 포함하거나 총점에 가감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등급별 점수 차이다. 서울대와 고려대는 1·2등급 간 차이가 크지 않지만 연세대는 5점 이상 차이가 벌어져 부담이 크다. 서울시립대 인문Ⅰ은 1·2등급의 차이는 4점이지만 2·3등급은 11점으로 차이가 크다. 반면 동국대는 1·2등급은 0.75점 2·3등급은 1.5점으로 차이가 미미하다가 3·4등급에서 5점 차가 벌어진다.
유 교사는 “환산 점수에서 국어와 수학이 영어 등급을 보완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시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 환산 점수이며 여기에는 국어 수학 탐구 영역이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수능은 영어 1등급의 절대적인 수가 적은 데다 그중 수시에 합격한 인원도 많아 결국 비슷한 등급끼리 경쟁하게 된다.
허 수석연구원은 “올해는 영어 1·2등급 인원이 줄고 국어 난도가 올라가면서 영어 등급별 점수 차가 큰 연세대라 하더라도 영어 1등급만 지원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2024학년에도 영어 2등급이 연세대에 합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영어보다는 이번에도 확산된 ‘사탐런’과 국어의 높은 난도가 정시에 미칠 영향이 훨씬 크다는 평가다.
◆고3 정시 전략 예년과 변함없어 = 고3의 정시 전략은 예년과 변함이 없다.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대학을 가늠하고 모의 지원 서비스를 활용해 환산 점수의 유불리를 따지면 된다. 이때 자신의 영어 등급보다는 ‘사탐런’과 ‘불국어’를 더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는 것이 좋다. 전체 수험생의 표준점수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영어 등급이 4등급 이하라면 영어의 비중이 작은 대학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4등급부터 점수 차이를 벌리기 때문이다. 영어 등급이 4등급이라면 다른 영역으로 낮은 영어 성적을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장지환 배재고 교사는 “수시 이월과 정시 지원 경쟁률도 지켜봐야 하는 만큼 지금은 지원 모집 단위를 결정할 때가 아니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성적대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을 확인하고 그 대학의 취업률과 학사 제도 등 기본 정보를 탐색하며 미래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설명이다.
◆고1·2 단계별 목표 설정이 관건 = “등급이 아닌 원점수 상승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불영어’ 논란을 지켜보며 앞으로는 수능 영어의 난도가 내려갈 것이라 예상하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올해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3점 문항 한두 문제로 등급이 내려간 학생이 다수였다. 영어를 활용해 최저 기준을 맞출 계획으로 다른 영역 공부를 소홀히 했다면 수시에서 고배를 맛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시에서 희망 대학을 지원하기에는 전체 성적이 부족하다.
입시에서 안정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모든 영역의 성적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영어는 등급이 아닌 원점수 상승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
윤 교사는 “우선 전통적으로 어려운 빈칸 추론과 글의 순서 문장 삽입 유형을 제외하고 나머지 문항을 전부 맞힐 수 있도록 목표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등급별로 시작해야 할 과제는 다르다. 4등급 이하라면 2점 문항에서 틀리는 일이 없도록 약점을 보완하고 3등급이 안정적으로 나온다면 앞번호의 3점 문항부터 공략하는 것이 좋다.
윤 교사는 “이후 3학년에 올라갈 때나 수능 직전부터는 고난도 문항을 따로 모아 풀면서 공략해야 한다”며 “영어는 등급으로 점수가 나오기 때문에 분명한 목표를 정해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또한 올해 영어는 어휘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윤 교사는 “문제는 지문 하단에 주석으로 나와 있는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배운 적이 있으나 지문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 수 없는 다의어가 문제라는 것이다. 글의 맥락을 고려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으려면 독해력이 필요하다. 철학과 사회과학 주제의 지문 역시 시험 난도를 높이는 주범인 만큼 국어와 영어를 넘나들며 독해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이다.
◆2028 이후 수능 영어 영향력 더 커질 수도 = 특히 서울대를 염두에 둔 상위권 고1과 중학생은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서울대는 2028학년 정시에서 1단계는 수능 등급을 2단계는 수능 백분위를 활용해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1단계 수능 등급 평가에는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 영역이 모두 포함된다. 지원자층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서울대를 희망하는 학생은 수능 영어 1등급을 확보해야 정시에서 불리하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대의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정시가 전 영역을 고르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3 수험생은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기준으로 냉정하게 지원 전략을 세워야 하며 예비 수험생은 등급이 아닌 실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어려운 문항 유형을 단계별로 공략하고 독해력을 기르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의 열쇠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