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

2025-12-31 13:00:01 게재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저물어간다. 돌이켜보면 올 한해를 관통해온 화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였던 것 같다. 지난해 말 느닷없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저항에 힘입어 극적으로 회생했다. 탄핵광장의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는 ‘아티비즘(Artivism, 예술+행동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K-민주주의는 대한국민의 또다른 자부심이 됐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치권은 오히려 민주주의 규범을 무너뜨리고 있고, 주권자들 중 일부는 극단주의와 확증편향의 노예가 돼 스스로 주인(民主)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매년 167개국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지난해 12.3 내란사태 후 한국을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강등한 바 있다. 아마 올해 평가에선 제자리를 되찾겠지만 ‘결함의 해소’는 여전한 숙제라 하겠다.

일방통행 여, 반성 못하는 야 모두 민주주의의 적

윤석열의 민주주의 파괴에 동조했던 국민의힘은 내란사태 발발 1년이 지나도록 아직 공식적으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절반에 가까운 의원들이 ‘윤석열과의 절연’을 주장했지만 장동혁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야당대표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장 대표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같은 책을 들고 연단에 올라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그가 민주주의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과거 내란사태를 두고 “하나님의 계획”이라며 헌정파괴를 옹호했던 그가 이제 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모습은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헌법재판소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탄핵반대”를 외쳤던 의원들도 자격미달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민주주의자인가? 물론 위헌·불법적인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윤석열을 파면하는 데 민주당은 나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민주’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다. 야당이나 사법부에 대한 태도, 입법독주 등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은 쪽수가 민주주의의 절대 기준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히틀러의 나치당도 다수당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정치학자 존 킨은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이라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요즘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 메커니즘이 민주주의 적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다수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다원적 자유와 정치적 평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주권을 가진 국민’의 이름으로. 딱 우리 민주당을 꼬집은 얘기같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적은 여의도에만 있지 않다. 탄핵광장의 ‘아티비즘’이 민주주의를 구출해냈다면, 그 뒤편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극단적 팬덤은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아스팔트 우파와 개딸의 이분법적 사고는 나치 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정치의 기본조건은 전쟁’ ‘정치적 구별이란 원래 적(敵)과 아(我)의 구분’이라는 슈미트의 정치철학이 히틀러 독재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나 있나 모르겠다. 정치를 대화와 타협이 아닌 ‘섬멸해야 할 적과의 전쟁’으로 보는 순간 민주주의는 실종된다.

헌재가 ‘관용과 자제 부재’를 질타한 뜻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의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과 국회의 ‘관용과 자제 부재’를 강하게 질타했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하며 대통령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했다”고 했다.

그 사이에 여야가 바뀌었지만 헌재의 이 주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비공식적 규범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해가 마무리되는 이 순간까지도 쪽수에 의존한 일방통행과 혐오와 경멸의 손가락질만 난무하는 정치권을 보노라면 조금 암담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2026년에도 또 다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안녕하신지’를 묻게 될 것 같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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