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2026년을 중대재해 추세의 변곡점으로
중대재해 감축을 향한 정부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고해 보인다. 그러나 현장의 지표는 차갑기만 하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현장과 사고에 대한 본질적 이해는 보이지 않고 행정 관료의 시각으로 채워져 있다. 현장의 실상이나 속마음과 동떨어진 채 유행 따라 포장만 바꾼 진부한 대책들로는 현재의 중대재해 감축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해당 현장은 사고 직전 3일간 매우 엄격하고 세밀한 ‘산업안전 특별감독’을 받은 상태였다. 그 사고는 산업안전 정책이 ‘법규 준수로 모든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미신에 빠져 있음을 드러낸 뼈아픈 방증이다. 현재 대규모 현장은 모르거나 비용 때문에 법규를 어기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과잉준수로 위험과 행정낭비가 증폭되고 있다. 규제기관 교감이 우선적 경쟁력이 된 안전시장은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과거 정부의 증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현정부의 규제중심 노동안전 정책도 상당히 우려된다.
중대재해 답보상태는 규제중심 관료행정이 가장 큰 영향요인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 효능을 알 수 없는 입법과 규제 강화는 정부의 의지를 ‘공허한 구호’로 만들 뿐이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지자체 이관, 산업안전 혁신의 기회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그간 3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 배제 등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전체 사망재해의 70% 이상이 이곳에서 발생하지만, 개별 사업장 단위로 보면 사망사고 확률이 ‘300년에 한번’도 되지 않아 사업주의 안전의식은 낮았고 280만개가 넘는 사업장 수는 부실행정의 변명이 돼왔다.
따라서 이번 지방자치단체 이관이라는 변화는 낡은 정책의 관성에서 벗어날 절호의 혁신 기회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는 ‘떠넘기기’라는 비난을 의식해 지자체에 간섭하려 해서는 안 된다. 행정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는 꼼꼼히 이관하되 무용한 낡은 정책 훈수로 이 기회를 망쳐서는 안 된다.
정부 소규모 사업장 재정지원, 마중물되면 성공
정부 재정지원이 마중물되면 성공이다. 소규모 사업장 안전 확보를 위해 현재 1조원 이상의 정부 재정이 확보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업주의 관심 밖에서 수익에 급급한 중간업자의 신청 대행으로 집행되는 부조리가 난무하는 ‘주인없는 돈’의 가성비가 어떠하겠는가.
사업장이 직접 구매한다면 반값 이하로 살 수 있는 물품도 적지 않다. 혁신의 성패는 사업주 자발적 신청과 직접 집행 여부에 달렸다. 정부 재정으로 사업장 자율안전을 끌어내야 중대재해의 추세적 감소가 시작될 것이다.
“목마르지 않은 말은 물가로 끌고 가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격언은 산업안전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장을 잘 아는 사업주가 스스로 안전확보를 위해 비용을 요청하고 이를 자기 돈처럼 아껴 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 산업안전 행정이 이러한 구조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정책 비전과 성과 지표로 설정할 것을 제안하며 성공에 필요한 두가지 전제조건을 덧붙인다.
첫째, 담당 공무원의 열정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파격적인 보상체계다. 담당자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기 충분한 성과수당을 지급하자. 대신 부조리가 확인될 경우 처벌과 더불어 지급된 수당 전체의 3배를 과징금으로 회수하는 엄격한 책임제를 병행해야 한다. 중대재해 감축과 재정 효율성 상승에 비하면 평균이 본봉 이상인 수당을 지급하더라도 결코 낭비가 아닐 것이다.
둘째, 현장 맞춤형 정보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안전기술 전문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이 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 연간 수만건의 재해발생 보고서를 정밀 분석해 업종·규모·제품별로 유용한 정보를 개별 사업장과 지자체에 제공하는 ‘지능형 컨트롤 타워’가 작동해야 한다.
산업안전 패러다임의 전환
예산, 구성원의 역량, 시스템 작동은 옌스 라스무센(Jens Rasmussen) 덴마크 국립과학연구소 교수가 제시한 ‘안전한 정상작업의 3면 울타리’다.
2026년 30인 미만 사업장의 지자체 이관은 산업안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규제중심에서 ‘현장 밀착형 지원’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 이로써 우리에게 ‘300년 만의 불행한 우연’을 ‘일상의 정상작업’이 방어해 내는 시대가 열리길 고대한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