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시민의 정치지성과 ‘민주공화파’ 형성의 소망
‘시민의 정치지성’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주도한 친위쿠테타-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내란 기도-마저 겪은 한국 민주공화정의 위기 혹은 취약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정치지성이 발현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부의 배분에 관한 민(民)의 주권자적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고 촉진해 사회성원 간의 힘의 균형과 조화를 낳는 좋은 정치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친위쿠테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켰다는 것 자체로는 민주공화제의 위기도, 좋은 정치의 실현도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2.3사태 이후 2026년 새해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현실정치는 혼란스럽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정치·사회적 양극화, 여전히 정돈되었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미국과의 외교·통상갈등 등 나라 안팎의 어려운 문제를 두고 숙고하고 숙의하는 정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또 문제 해결의 방도를 갖고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정치도 부재하다. 다루고 있는 사안과 문제를 다루는 행태가 경쟁세력과의 갈등 조장을 위한 것이고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식이다.
지금 시민의 정치지성을 갈망하는 이유
주류세력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정치의 이런 양상은 이재명정권 출범 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 즉 내란 수습과 국정 정상화에 대한 평가 의미를 담은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 한층 더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
특히 빨갱이 척결과 (자신들이 패배한 선거의) 부정선거론 등을 신조로 삼는 극우세력의 지지에 의존하며 ‘윤 어게인’의 미망 속에 빠져있는 국민의힘은 이재명정권과 국회의 정당성과 권위를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에 정치갈등의 파고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어루고 달래고 교란하며 보수개혁을 유도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 내란세력 척결이라는 무딘 칼로 내려치려는 공세전략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
기성 정치세력이 무시못할 새로운 도전자 정치세력이 존재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정치개혁을 논할 때마다 제3지대론(제3당론) 등이 등장했던 이유다. 기성 정치세력의 대체까지는 어렵다 해도 혁신을 유도하고 강제할 수 있는 그런 정치세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내내 있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혹은 애석하게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유권자들은 결국 양대 정당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을 띠었다. 201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는 믿을만한 유능한 제3세력 후보감이 미약 혹은 부재했기 떄문이기도 하고, 지역구도와 소선거구제 등 정치의 구조적·제도적 환경의 제약을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민의 정치지성은 바로 여기서 발동될 수 있다. 기성정치세력의 자기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자 정치세력의 출현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결국 기댈 곳은 시민의 정치지성이다. 어떤 특정 정치세력의 승패를 넘어서 자신의 당파성마저 민주공화제의 안정과 지속발전을,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힘’과 그것의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
시민의 정치지성은 선거 승패만으로는 좋은 정치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현실을 주권자 스스로 넘어서기 위한 방책의 이름이다. 민주공화제에 걸맞는 규범의 지향이면서도, 주어진 현실에 천착한 실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성 정치세력이 시민을 유권자로만 이용하게 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시민이 기성정치세력을 국가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촉진하는 도구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의 정치지성은 ‘민주공화파’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켜가자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공화제 지키려는 시민 의지 이미 확인돼
우리는 이미 ‘촛불혁명’ ‘빛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가-대통령-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막아내며 민주공화제를 지켜내려는 시민의 견결한 의지와 힘을 확인해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권리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실천도 목도해왔다.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끌어냈던 시민의 직접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2026년 새해, 그런 시민의 의지와 힘과 실천이 개혁적 보수정치세력도 일궈가며 일상적 정치과정에서도 작용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