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베네수엘라 사태와 트럼프의 계산

2026-01-05 13:00:03 게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직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언급한 것은 즉흥적 발언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를 단순한 정치위기 국가가 아니라, 석유를 매개로 다시 ‘관리 가능한 공간’으로 편입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적 계산으로 읽힌다. 마두로 제거와 동시에 석유 인프라 복구, 미국 기업의 진출을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한 점은 이 사안이 군사·사법 문제가 아니라 권력 재배치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 석유는 수익성만 놓고 보면 매력적 자산이 아니다. 매장량의 상당 부분이 초중질유로 채굴과 정제 비용이 높고, 노후화된 인프라와 기술 부족으로 생산성도 낮다. 대규모 투자가 없으면 증산은 어렵고 회수 기간도 길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 자원에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석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권력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생산과 유통을 통제할 수 있다면 가격 수급 외교 금융흐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이익 그 자체라기보다 영향력의 회복이다.

중국 에너지 공급망과 국내 정치 지형을 겨냥한 포석

마두로 체포 과정에서 드러난 트럼프식 외교는 이를 더욱 분명히 한다. 군사작전과 사법체포, 그리고 자본투입 구상이 한 흐름으로 제시됐다. 외교적 협상이나 다자적 조율이 아니라 ‘집행’에 가까운 방식이다. 정권 제거 이후 석유 인프라를 복구하고, 미국 기업이 투자해 비용을 회수한다는 논리는 단순하지만 위험하다. 국제법적 정당성이나 동맹의 동의는 부차적 요소로 밀려나고, 거래와 결과만이 강조된다.

이 구상은 중국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현재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절반 이상, 많게는 60~70%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600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고 이를 대부분 원유로 회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도 미국의 제재로 서방 시장이 막히자 사실상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장악할 경우 이는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을 직접 겨냥한 견제수단이 된다. 남미를 다시 미국의 근접 영향권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 이른바 ‘업데이트된 몬로 독트린’의 실험장이 베네수엘라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미국 내부 정치 계산도 얽혀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복구는 미국 석유기업의 사업 기회 확대를 ‘일자리와 성장’의 언어로 포장할 수 있는 정치적 서사를 제공하고, 정치 안정은 베네수엘라 난민 문제를 완화할 명분이 된다. 에너지 안보와 이민 문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전략은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도가 높다.

특히 물가와 주거비 부담, 민생 피로가 누적되며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외부 위기와 강경 대응은 여론의 시선을 전환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결단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해외 개입이 외교 정책을 넘어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기능하는 순간이다. 36년 전 파나마를 침공해 같은 날(1월 3일) 노리에가 대통령을 ‘마약 사범’으로 몰아 미국으로 압송한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지율은 90%대까지 뛰어 올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그 다음’이다. 정권 붕괴 이후의 공백이 아니라, 그 공백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채우려 하는가이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적절한 이행이 이뤄질 때까지 베네수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해 미국 주도의 관리 체제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석유기업들이 인프라 복구와 생산 회복을 맡으며 사실상 준정부적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치안불안, 군부의 영향력, 사회적 분열은 기업 활동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 석유가 경제 재건의 열쇠가 될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환영과 비판 공존하지만 장기적 질서 해칠 위험 분명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놓고 국제사회는 환영과 비판, 신중의 세 갈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을 중립적 해석의 문제로만 남겨두기는 어렵다. 힘의 사용이 단기적 성과를 낼 수는 있지만 그 방식이 국제규범과 주권의 경계를 무시할 경우 장기적 질서를 해칠 위험은 분명하다.

석유를 되찾겠다는 계산 아래 군사·사법·경제 수단을 한꺼번에 동원하는 행태는 결과와 상관없이 선례를 남긴다. 그 선례는 결국 미국이 스스로 주장해온 규칙과 질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는 지금, 힘이 통제력을 만들어낸다는 믿음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그리고 그 대가를 누가 치르게 되는지를 묻는 시험장이 되고 있다.

김상범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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